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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Feb 25. 2024

<언제나 책봄> '달맞이꽃과 꼬마화가'

동화를 보고 울다

꼭 한 달 전이다.

'이제 봄이야'라고 속삭이듯 초록의 새순이 쭈욱 얼굴을 내밀고 그 옆엔 노란 봄꽃이 조그맣게 피어있었다.

"어머나 예뻐요. 직접 만드셨나 봐요" 메시지를 보내자

'삼베그릇'이라고 답장이 왔다.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일하던 중이라 '삼 베 그 릇' 네 글자에 하트 표시만 남기고 말았다.

故 한명철 작 삼베그릇


내가 유일하게 작가님이라고 했다가도 마음이 울적하면 아저씨라고 불렀던 분.

버려진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무 인형을 만들었던 분이다.

어릴 적 은행에 다니는 아빠를 따라 직장 야유회를 가면 인상 좋게 생긴 그 아저씨는 가끔 내게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을 던지곤 하셨다.

성인이 되어선 괴산군 칠성면으로 나무인형을 만드는 아저씨를 취재하러 갔던 게 다시 인연이 되었다. 이후에도 살면서 힘들었던 순간 어찌 아셨는지... 편지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아주 가끔씩 나비처럼 날아와 날 웃게 만들곤 했다.

지난여름 언젠가쯤에는 두 남매를 데리고 작가님 댁을 놀러 갔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작가님 작업실을 다녀온 후 11살 딸은 한 참 안 그리던 그림을 다시 그리기도 했었는데.....


회식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있는데 작가님 번호로 부고 메시지가 왔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삼베그릇'이라고 메시지가 왔을 때 전화를 드렸어야 했다. 그때 그 작품을 보고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었는 데... 삼베에 노랑 물감으로 꽃을 그린 아저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프셨던 걸까?' 울컥하는 마음을 꾹 한 번 누르고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했다. 함께 직장 생활을 했던 아빠는 그날 밤 장례식장에 조화를 보내고 식탁에 앉아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셨다.




세종에 출장을 왔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때마다 만나는 반가운 분들이 계셨지만 오늘은 한시라도 빨리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일요일에 발행되는 브런치 연재 글을 쓰기 위해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은 꼭 읽어야 하는데 이 번주는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너무나 힘든 한 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건 이렇게 일상이 지쳐갈 때쯤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천사들이 나타난다는 거다. 지친 하루에 활력을 불어넣어  책 한 권. 평소 좋아하는 작가님께서 엄마 편에 동화책을 보내주셨다.

그러고 보면 난 참 복이 많은 사람.


'달맞이꽃과 꼬마 화가' 책 표지만 봐도 저절로 미소가 흐르는데 책장을 넘기니 그 미소는 함박웃음으로 변한다.


작가님께 전화를 걸었다.

"감사해요. 책도 책이지만 친필 싸인이요. 예쁜데 사랑스럽다고까지 해주셨잖아요. 저 좀 속물 같지만 이런 말 참 좋아해요"

"동화책이라 짧아서 부담 없이 읽을 거예요"


아무도 없는 호텔 방. 일회용 드립 커피를 내리고 지난주 틈틈이 읽었던 동화책을 다시 꺼냈다.

도심 창밖의 야경과 방안 가득 퍼진 커피 향,

노란 달맞이꽃과 꼬마화가를 만나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매일 교실 창밖으로 하얀 종이가 날아다녔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날마다 이런 짓을 하는지 알아봐야겠어. 창밖으로 휴지를 던지다니... 고얀 녀석"


화나서 그 종이를 주은 교장선생님은
....중략...

<이제 나도 글을 읽을 수 있다.
편지도 쓴다.
누구든지 이 편지 받고 답장 보내봐라.
내가 큰소리로 읽을 테니까
1학년 매화반 유태현>

종이비행기를 펴든 교장선생님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어요. 교장선생님은 서랍을 열더니 편지를 꺼내셨어요. 그리고 안경을 코끝에 걸치시더니 굵은 글씨로 답장을 쓰기 시작하셨어요.
나는 공연히 코가 시큰해져서 커튼 뒤로 숨고 말았어요.   

유영선 저자 '달맞이꽃과 꼬마화가' 중에서


첫 편인 종이비행기를 읽을 때는 내가 꼭 태현이가 되어 종이비행기를 날렸던 그 순간처럼 기분이 말랑말랑해졌다. 그리고 아이가 한글을  떼던 감동까지 소환돼 코끝이 찡해졌다.


'자연이의 나들이'를 읽을 때쯤엔 이제 하늘나라 그 어디쯤 계실 아저씨가 생각났다.

'달맞이꽃과 꼬마화가' 중에서
그래서 그들은 '나비'를 부르며 꿈속으로 가는 지연이와 한 마음이 되어 끝없이 도시 밖으로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데 눈물이 뚝 떨어졌다.


누런 삼베그릇 속에 피어난 노란 꽃이


자꾸만 자꾸만 생각나서....


To. 아저씨께

 기자 생활 15년 차쯤 일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회사로 편지 한 통이 와서 너무 놀랐답니다. 한지에 붓펜으로 적은 아저씨 글은 제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셨어요. 그리고 조금 더 기자생활을 이어갔죠.

평소 "인생 짧아.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모자라. 자유롭게 살아"라고 말씀하셨던 아저씨께 "새로운 일이 생겼어요. 공무원이요"라고 말했을 때 아마 아저씬 속으로 '너 하고 싶은 글이나 쓰며 자유롭게 놀면서 살지'라고 생각하셨을지 몰라요. 그런데도 "너무 잘 됐다. 축하한다"라고

해주셨죠.


천국에서 만나요.

그리고 가끔 심심하면 나비가 되어 날아와

세상 구경하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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