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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Mar 10. 2024

<언제나 책봄>'이끼숲'

미래 시대에 대한 불안 그리고 슬픔

천선란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 건 2년 전 초여름이었다.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은 작가라고 해서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 천 작가의 책은 시작부터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계 생명체에 잠식당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인 '노랜드'부터 신비로운 사막을 배경으로 한 로봇과 인간의 이야기를 로봇의 관점에서 풀어나간 '랑과 나의 사막'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이끼숲'까지...

천선란 작가의 글은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어쩜 이리도 한결같이 우울하고 불안하고 이름 모를 슬픔과 외로움, 낯선 그림자들로 가득 차 있는지 꼭 안개가 자욱한 숲을 홀로 거니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글은 신기하게도 멈출 수 없다.

우울한 딥블루의 끝엔 언젠가 환한 빛이 들어올 거라는 한 가닥 희망 그 비슷한 감정이 들어있기 때문일까?

한 세상 태어났다면 어둠보단 빛처럼, 슬픔보단 기쁨을 머금고 살아가려고 하는 편인데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속 심연에 숨어 사는 우울과 슬픔이 자꾸만 끄집어내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너머의 미래가 책 속의 지하 도시처럼 음습하고 어두울 거라는 나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지구 곳곳에 닥친 기후 위기 현상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있는 지금,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나쁜 예감.

'이끼숲'의 배경은 인간의 이기와 욕망으로 지구가 훼손돼 생태계에 종말을 맞이한 주인공들이 푸른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만든 지하도시이다. 반짝이는 하늘의 별도 볼 수 없고 흔한 풀 한 포기, 울창한 숲조차 없는 '닫힌 세계'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 이들은 음식 대신 하루에 한 알 VA2X를 먹지 않으면 정신재활원에 잡혀간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클론과 아바타가 존재하는 세상. 생계가 막막해지면 목소리를 복제해 다른 누군가에게 팔기까지 한다.


토요일에 나른한 오후인데도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아니면 닫힌 세계에서 나가고 싶어 발버둥 치는 주인공 유오 때문인지 머릿속이 뿌연 한 느낌이다. 꼭 매달 호흡기 알레르기 내과에서 찍는 엑스레이 속 내 코 주변 염증 사진처럼.... 안 되겠다 싶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목만 내민 채 물속에서 책장을 넘긴다. 물속에서 책을 읽어서인지, 주인공들에게 과한 감정이입을 해서인지, 내 몸뚱이뿐만 아니라 정신도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아직은 밝음이 슬픔보다 기운이 훨씬 더 세서 주중은 밝고 힘차게 웃으며 보내고 있지만 아이들이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있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없는 주말이면 가끔 안의 슬픔과 마주치곤 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넘어간 주중에 자잘한 일들이 마음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가 이런 책을 읽기라도 하면 불쑥 나오는 것이다. 예고도 없이... 그렇지만 이런 현상이 나쁘지만은 않다.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 중 딥블루의 우울함도 가끔은 끄집어 내어 어루만져줘야 하니까.


로봇과 사랑을 나누는 인간, 사랑했던 연인의 빈자리에는 그와 쏙 빼닮은 아바타가 있지만 대체할 수 없는 연인의 빈자리를 느끼는 슬픔, 한쪽 팔이 잘려나가면 로봇 팔로 대체할 수 있는 현재 그 너머의 미래.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가야 할 내 아이들의 미래가 천선란의 소설처럼 유별나게 슬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


끊임없이 순환하며 새 모습으로 계속 재탄생해. 하지만 그 건 식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행성의 시스템이야. 모든 생명은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씨앗처럼 뿌린다는 걸,
비롯 나는 없더라도 내 삶은 이 행성 전체에 퍼져 다른 생명을 꽃피우게 한다는 걸 잊지 마. 미안해.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말뿐이야. 그래도 기억해 줘. 이 말을 너한테 꼭 해주고 싶었어. 흙이 무너지던 순간에 말이야.   천선란 作 '이끼숲' 중에서


책 장을 다 덮고 나서 마냥 우울하지만 않았던 건

딥블루가 아닌 에메랄드그린 빛깔의 책 표지의 '이끼숲'이란 제목을 한참을 보고 나서다.


바위틈과 동굴, 녹이 슨 다리, 물이 고여 썩은 저수지, 관리되지 않은 더러운 수조 같은 곳에서
..... 이끼의 생존은 신비로운 강인함이라기 보다 생태의 흐름에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 치사하게 빌붙어 사는 느낌이다. 마치 나처럼. 그래서 오래 살아남은 것을 신기한 기적처럼 표현하는 그 애가, 나는 더 놀라웠다.


인간들은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이끼처럼 숲을 이뤄 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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