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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Mar 17. 2024

<언제나 책봄>'인생의 오후를 즐기는 최소한의 지혜'

인생의 절반에서 빛나는 오후를 꿈꾸다

울릉도 크루즈가 생겼다고 해 2년 전쯤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울릉도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아주 가끔 여행의 기억이 소환될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는 시간 동안 뜨문뜨문 그랬다.

한 여름 쏟아지는 비를 뚫고 울릉도 배 타러 포항에 가는 길. 눈으론 차 창에 동그랗게 맺혀 또르르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고, 나훈아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린다. 그 당시 일기장에는 '트로트도 비 오는 날엔 좋구나. 나훈아 노래가 이렇게 좋았던가? 나도 나이 드나 보다'라고 적혀 있다.


내 나이는 만으로 43살, 백수를 누린다고 치면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셈이다.

아서 브룩스의 '인생의 오후를 즐기는 최소한의 지혜'란 책이 눈에 들어온 걸 보니, 사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도 적지 않은 나이인 건 분명하다. 책을 손에 들었다 놨다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인생의 오후?? 아직 오후까지 계획하기는 좀 이른 거 아닌가? 이런 책은 5년, 10년 뒤쯤 머리가 희끗할 때 읽어도 되지 않나란 생각으로 서점에 서서 도입부를 읽었다. <인생의 파티는 계속되지 않는다>로 시작되는 1장,

'아직 난 젊어. 이런 책은 은퇴 전후에 읽어야지'라며 호기로운 마음을 가졌던 내게 출발부터 돌멩이를 던졌다.


작가가 책에서 언급한 대로라면

<에이징 커브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1985년 이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연령은 물리학자는 50세, 화학학자 46세, 의사 45세, 그 나이 이후로는 혁신적인 성과가 가파르게 하락한다.... 작가는 40~55세 쇠퇴기를 맞이하고 금융업 종사자들은 36~40세에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고, 장비서비스 기술자와 사무직 노동자가 최고 기량을 발휘하는 연령대는 35세~44세, 예를 들어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다면 평균적으로 44세에 정점에 도달한 후 기량이 저하되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이 43세인 나는 최고 정점에서 기량이 점점 쇠퇴하는 에이징 커브를 목전에 둔 것이다.

실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괘씸한 기분들어 이 책을 샀다.




경기도호텔 방. 오며 가며 좀 피곤한감이 있긴 해도 출장의 가장 좋은 점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과를 마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시공간을 넘나드는 시간 여행에 빠져 있으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프렌치 호른 연주자였던 작가는 20대 초반 연주 실력이 점점 퇴보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쉽게 연주할 수 있었던 곡이 어려워졌고 까다로운 곡은 연주가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그 후 9년이란 시간을 삐걱거리며 그 길을 고집하다 다른 대비책을 마련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자 공부를 계속해 사회과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을 접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 다가왔음을 직감할 때 찾아오는 고뇌에 사로잡혀본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다른 분야에 도전해 꿈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까? 예상대로 그는 심각한 워커홀릭이었다.

어느 날 작가는 우연히 밤비행기에서 만난 남자의 대화를 엿듣고 자신미래를 두려움에서 발전의 기회를 바꾸기 위한 탐색을 진행한다. 그의 오랜 탐색의 결과물이 이 한 권의 책 속에 들어있다.


작가는 비행기 안에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라고 한 남자의 말을 엿듣게 되는데, 그 남자는 한 때 용기와 애국심, 업적들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영웅적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인생의 절반을 달려온 난 대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작가는 자신이 어떤 부분에 중독되어 있는지 언급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는 점을 소리 내어 말하라고 조언한다.


제 삶에서 소중한 사람들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마음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일을 하느라 삶의 소중한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저를 구원하소서.
다른 이들보다 우월해지고 싶어 하는 저의 욕망으로부터
저를 구원하소서.
세상의 공허한 약속에 미혹되지 않도록 저를 구원하소서.
직업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자만심이 사랑을 대체하는 마음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중독을 극복하려는 고통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나이 듦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불행으로 이끄는 성공 중독에서 벗어나기,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삶의 불안전함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 등을 차례로 읽으면서

불현듯 온 가족이 함께 했던 지난 여름날의 울릉도 여행이 떠올랐다.






억수같이 퍼붓던 비가 여행지에 도착하자 딱 끊겼다.

새벽까지 자욱했던 안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을 선물한다.

날씨 요정이 사는 울릉도.

솜털 같은 구름은 덤이다.


늦게까지 푹 자고 여유롭게 다니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데

울 아부진 백마 띠답게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빨리 가자. 저기 가자. 여기도 봐야지"

"아빠 여행은 좀 천천히 하자. 여유롭게 만끽하면서"

.............(포즈)...............................

"내가 죽기 전에 여길 또 올 수 있겠냐?"

아빠의 말에 갑자기 눈동자에 물이 차올랐다.

"그래 아빠 어디든 가자!"

내가 죽기 전에 여길 또 올 수 있겠냐는 아빠의 말이 시간이 지나서도 잊히지 않는다.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마주하게 되는 직업적, 정신적, 육체적 쇠퇴 앞에서

더 멋지고 현명한 인생 후반을 살기 원한다면

당신이 쌓아 올린 것,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직업적 삶을 내려놓을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 '직업적 죽음'을 경험해야만 당신은 두 번째 곡선 위로 올라설 수 있다고...

작가의 말대로라면 '에이징 커브'가 오기 전에 기자란 직업을 내려놓고

새 인생을 살기로 선택한 것은 참 잘한 일 같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역시 그 전과 비슷하게 바쁘게 돌아가곤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신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걸 되새기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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