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가영 Mar 24. 2024

<언제나 책봄> '천년의 독서'

독서 노트 연재 후 찾아온 변화

어릴 적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엄만 대부분 요리나 청소를 하고 계시거나 소파에 책을 잔뜩 쌓아두고 가만히 책을 읽곤 하셨다. 조용하고 차분한 엄마 성격과 달리 늘 에너지가 넘쳐 역동적이던 책 읽는 엄마에 대한 기억다소 따분하고 심심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얘기를 잔뜩 어놓고 싶은데 말없이 책을 읽고 계신 엄마를 면 이야깃거리로 가득 찼던 뾰로통한 내 입술도 오물거리다 말았다. 친구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한참을 뛰어놀다 보면 마음 한 귀퉁이에 있던 조용한 엄마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그때뿐이었다. 놀 친구가 없는 날엔 내 방으로 들어와 책 장 가득 꽂혀있던 파브르 곤충기와 안네 일기, 엄마가 보던 두꺼운 명화 전집을 심심풀이로 보곤 했다. 책 속에 빠져있는 엄마를 먼발치서 가만히 관찰하기도 했는데, 주로 수필집이나 같은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사서 읽으셨던 거 같다. 어린 내가 본 책 읽는 엄마의 표정은 재밌고 즐거워 보이긴 보단 뭔가  우울하고 고독해 보이기까지 했다. 엄마가 읽고 있던 이미륵 작가의 '압록강은 흐른다'와 김용택 시인의 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 등을 뒤적거리기도 했는데 초등학교 시절 내가 그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작고 빡빡한 글씨에 지레 겁을 먹어 책을 덮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책 읽는 엄만,

책이 좋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책을 보며 그 시절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답답했던 현실을 견디고, 살아내는  

도구로 책을 가까이했던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은행에 다니셨던 아빠는 늘 술자리가 잦아 늦기 일쑤였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해 걸핏하면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술을 드시곤 했다.  요즘 애들 표현으로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T와 F가 부부로 만났으니 취미도 성격도 극과 극인 그분과 한평생 살기가 녹록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난

그녀를 너무 닮아있다.


성향이나 식습관, 가치관, 성격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b와 열열한 17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고 14년째 살고 있다. 맞지 않는 부분들을 맞춰나가려고, 아니 고쳐나가려고 노력했지만 '남편은 바꿀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좌충우돌 내 삶의 일상을 담았던 내 블로그 이름도 '기자와 미용사' 다. 실제로 우리 부부는 많이 다르다. 직업적으로 일하는 방식이나 패턴, 만나는 사람도 다르다 보니 거기서 오는 충돌이나 서운함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싸우는 게 현명하지 못하 단 걸 깨달았고, 살면서 채워지지 않는 왠지 모를 헛헛함과 공허를 난 책으로 채웠던 것 같다.


우리 엄마처럼...


기자란 직업을 하면서 넘지 못할 단단한 벽에 부딪혔을 때도, 녹록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고 푹 꺼져 있을 때도 책을 읽으면 마음이 금세 편안해지곤 했다. 그러다 직장을 옮기고 브런치에 독서노트를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하면서 더 큰 변화가 찾아왔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넘어 그 내용을 리뷰하고, 까마득히 잊혔던 지난날 과거의 나와 만나는 일은 신비로운 경험이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벌써 <언제나 책봄> 10회 마지막 회다. 일주일에 한 번 기사 마감이 아닌 내 글을 마감하는 일은 시간을 나누어 쓰는 기술(?) 그 비슷한 걸 습득하게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보다 sns에 들이던 시간도 줄어들었다. 마감 때문이라도 조금만 틈이 나면 책에 손이 가는 아주 모범적인 현상이 이어졌고, 내가 책을 읽으면 그 시간에  아이들은 자연스레 숙제를 했다.

가장 유의미한 변화라면 마음속 화를 다스릴 수 있었다. 아무리 답답하고 화가 나도 잠시 숨을 고른 뒤 책장을 몇 장 넘기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 가슴속에 똬리를 틀었던 미운 마음과 화가 진정이 됐다. 그래서 마지막 연재는 독서와 관련된 책을 선택하고 싶었다.


'천년의 독서'의 저자인 미사고 요시아키는 일본 최고의 서점 체인 츠타야의 우메다 지점 오픈 멤버이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 불과했던 작가는 그간 인생에 있어 잦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서점에 취업해 수많은 책을 읽으며 작가가 되었다. '인간이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책이라는 세계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책 예찬론자가 되었다.


책을 펼치면 상상을 초월한 고통과 불행을 이겨낸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저자와 함께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켜켜이 누적된 지혜를 만날 수 있지요.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배웠습니다.
신기하게도, 삶이 순조로울 때는 책이 그다지 시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 때, 실패했을 때, 눈앞이 캄캄해졌을 때 '인생의 책'을 만납니다.


독일 동화작가 미하엘 엔데는 <엔데가 읽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당신이 인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할 때, 아주 적절한 순간에 아주 적절한 책을 들고 아주 적절한 부분을 펼쳐서 지금 당신에게 꼭 필요한 답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작가는 '책에는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굳게 믿는다. 앞이 보이지 않았던 순간, 우울감에 휩싸여  포기하고 싶었던 절체절명의 그 순간에도 책 속의 주옥같은 한 문장이 다시 날 살게 했으니까.


무라카이 하루키는 "책을 자주 읽는 사람과 거의 읽지 않는 사람, 둘 중 어느 쪽의 인생이 더 행복할까요? 대체로 읽지 않는 사람이 더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한 독자의 질문에
"설령 불행해진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좀 받는다 해도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 책을 읽는 인생이 훨씬 좋습니다."라고 답한다.


나 역시 책을 읽는 인생과 책을 읽지 않는 인생을 택하라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책을 읽고 난 뒤 그 느낌을 내 삶 속에서 반추하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빛나는지,

에 찾아오는 긍정적인 변화를 스스로 체감하는 중이다. 

그래서 <언제나 책봄>은 마지막 연재가 아니라 1년 정도 지속해 볼 생각이다. (살짝 걱정도 앞서지만...)


10주 동안 볼 일 없는 글을 읽어준 독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가끔은 피곤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독자들이 건넨 하트를 볼 때마다 조금 일찍 일어나 책장을 넘겼던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가영 잘했어. 앞으로의 삶 속에 찾아오는 자잘한 고민이 있어도 걱정 마. 그 정답은 책 속에 있을 테니까."

이전 09화 <언제나 책봄>'인생의 오후를 즐기는 최소한의 지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