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가영 Mar 31. 2024

<언제나 책봄> '의자, 이야기를 품다'

글 쓰는 엄마와 함께 사는 건 행운

이번 주 내내 틈나는 대로 읽었던 책이 는데 영 마음이 동하지가 않는다. 책 띠지에는 43개국 600만 부 판매, 전 세계적으로 19초마다 1권씩 팔리는 책이라고 적혀있던데... 눈으로는 분명 활자를 따라가고 있는데 머릿속으론 자꾸만 딴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것도 자신에게 맞는 것이 있는 것처럼 책 또한 그런 듯. 자신이 처한 상황, 책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독자의 눈높이에 따라 '인생 책'이 될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 <언제나 책봄> 10회 연재를 마치고 1년 간 일주일에 책 한 권, 독서노트를 써보기로 다짐한 첫 주인데 일요일 마감이 코 앞이다.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푸딩이(울 집 반려견 몰티즈) 봄맞이 미용을 맡기고, 아들 알레르기 예방 주사를 맞으러 병원으로 향한다. 아이러니한 건 아들의 알레르기 원인이 개털, 아들의 알레르기 요인을 줄이기 위해 푸딩이 털을 다른 강아지들보다 짧게 깎이고, 아들은 알레르기 주사를 주사를 맞는다는 사실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아들이지만 알레르기 때문에 가족과 3년을 함께 한 푸딩이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없어 가족이 함께 결정한  사항이기도 하다.


아빠의 1박 2일 봄 외출로 자유부인이 된 친정 엄마는 봄을 맞이하는 생동하는 꽃처럼 표정이 설렌다.

"가영아 오늘 그림 보러 갈래?"

"응 좋아! 애들 아동참여위원회(아동친화도시 조성을 위해 아동의 의견을 시 정책에 반영하는 기구) 간 사이 우린 네오 아트센터 가자. 한 동안 못 갔어"

미세먼지가 뿌연 하늘이지만 벚꽃 축제 때문인지 시내로 가는 길이 제법 막힌다. 청주는 예년보다 벚꽃 개화 시기가 늦어져 아직 하얀 목련만 활짝 얼굴을 내밀었을 뿐 길가에 벚꽃은 수줍은 듯 분홍빛 꽃망울만 달려있다.


"엄마 전자책 봐? 전자책 가입했어. 아이디 비번 공유해 줄까?"

"벌써 보고 있지. 핸드폰 새로 샀더니 두 달 무료라고 해서.. 너 요즘 뭐 보니?"

"엄마가 사 온 책 있잖아. 이번 주 그 책으로 '언제나 책봄' 쓰려고 하는데 영 느낌이 안 와"

"내가 자주 가는 블로그 주인장이 쓴 책이 있는데 글이 참 좋아. 장미숙의 '의자, 이야기를 품다' 어쩜 의자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눈으론 저번에 서점 갔을 때 살까 말까 고민하다 내려놓았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클릭하다가 커피숍에서 엄마가 읽어주는 낭랑한 목소리에 매료돼 곧 그 책을 찾아본다. 온라인독서플랫폼의 매력을 새삼 느낀다.


빵집 직원과 건설자재 회사 인부가 가진 공통점이라면 누군가에게 고용(雇傭)된 사람이고, 몸으로 하는 일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공통점이 있다. 서 있는 자도, 쪼그려 앉은 자도 의자를 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부들도,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도,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일하는 나도 모두 의자가 없다.


 가정환경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작가는 열일곱 살에 공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늘 사무실 직원이 되고 싶었던 열망을 품었던 작가는 먼 길을 돌고 돌아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지만 중년의 아줌마가 선택할 수 있었던 직업은 흔치 않았다고 한다. 작가가 빵집에서 일하게 된 이유다.


온종일 서서 두 다리로 삶을 지탱한 지, 칠 년이 되어 간다. 해가 바뀔 때마다 몸이 조금씩 기우는 걸 느낀다. 한 평 남짓한 나의 작업공간에 의자는 없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데다, 앉을 시간도 없어서다. 내 의자가 없을 뿐, 매장에는 의자가 많다. 손님들이 편히 차를 마시며 쉬어 갈 수 있도록 은은한 조명 아래서 의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의자가 비어 있어도 내가 앉을 수 없는 곳, 직원인 나는 의자의 주인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열 발자국 거리에 있는 의자가 심리적으로는 한없이 멀다.

20년 간 목받이까지 있는 푹신한 의자에서 기사라는 걸 쓰면서, 매일 아침 업무 보고를 위해 다다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단 한 번도 의자에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일이 고되면 그냥 고된 줄만 알았지 그 누군가가 동경하는 도구가 의자일 줄은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나의 무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었다.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피는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에도 의자 없이 요구르트를 팔던 아줌마가 떠올랐다. 분수대 가장자리가 그분에게는 잠시 앉을 있는 의자가 수도 있다는 걸.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엄마가 곁에 있어 참 좋다. 

더구나 엄만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등단 작가다.


쇼펜하우어는 <문장론>에서 '스스로 사색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소재를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잘 쓰진 못해도 현실에서 소재를 찾아 활자로 옮기다 보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데서 기쁨을 찾을 수 있고, 살면서 이리저리 다치고 깨졌던 마음을 글로 적다 보면 어느새 차분해진 내 마음에 용기가 북돋아진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비단 sns에 올라오는 짤막한 글 속에도 허례허식으로 꾸며진 글인지, 진심이 묻어나는 글인지 금세 티가 난다. 장미숙 작가의 수필 속에는 그가 살아온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솔직 담백하게 묻어난다. 투박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인생을 글로 풀어내는 작가의 일상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일까? 베스트셀러보다 엄마가 권한 이 책 한 권이 오늘 가슴에 더 와닿는 이유다.



서로가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소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모녀는 수암골에 있는 갤러리로 향한다.


지난해 1월 기자를 그만두기 넉 달 전 청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취재를 했던 이승미 작가의 작품을 발견하고 몹시 기뻐 취재를 갔던 날 이야기보따리를 엄마에게 풀어놓는다.


이승미 작가의 <무심> 한지에 채색 2023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달마티안 조형물과 눈을 마주한 엄만

"왠지 슬퍼 보여."

"응 철제 조형물인데 이은 부분들이 노랗게 녹이 슬어서 더 그럴 거야"



잠시 쓸쓸한 마음이 들었던 모녀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화폭을 수놓은 꽃망울을 보며 금세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한다. 

박진명 작가의 '똑같은 봄은 없다'


박진명 작가의 '똑같은 봄은 없다'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은 하루는 없다.


그 어느 날보다 특별했던 모녀의 봄날.


이전 10화 <언제나 책봄> '천년의 독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