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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Apr 07. 2024

<언제나 책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그리고 그를 향한 사유

세계적인 음악가 반열에 올라 자신이 살아온 삶을 회상하며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영화 '마지막 황제'로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자서전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유치원 때 선생님이 토끼를 한 달 동안 길러본 후 그때의 마음을 노래로 만들어 보라고 한 것이 그의 첫 작곡이라고 한다. 만약 사카모토의 어머니가 도쿄 도모노카이 세타가야 유아생활단(미술과 음악 및 동물의 사육을 중시하는 유치원)을 보내지 않았다면, 토끼를 주제로 작곡의 특별한 첫 경험이 없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강렬한 체험이었다. 토끼를 길러 본 일도 그랬지만 그걸 노래로 만든 건 훨씬 더 했다. 왜 이런 이상한 짓을 하라는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근질거리는 듯한 기쁨. 다른 누구의 것과도 다른 나만의 것을 얻었다는 감각. 그런 걸 느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우연이든 필연이든 살면서 경험하는 강렬한 첫 번째 경험이 있게 마련인데... 내겐 무엇이었을까?

일주일간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과거의 나를 회상하며 7살의 어린 를 만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삶 속에 음악이 차지한 부분이 얼마나 컸는지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부분을 줄곧 아파트 생활을 해온 내게도 단독 주택의 기억이 있다. 햇살이 잘 드는 마당이 있는 집 바로 앞에는 피아노 학원이 있었다. 굵은 뿔 테를 쓴 피아노 선생님의 박자 소리에 맞춰 하얀 건반에 작은 손가락을 얹고 바짝 긴장을 한 일곱 살의 어린 내가 떠오른다. 사실 그때 난 피아노를 치는 행위 자체도 좋았지만 그날 하루 크고 작은 일들을 선생님께 조잘거리며 떠드는 시간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피아노 레슨을 받다가도 엉뚱한 질문을 쏟아내는 내게 선생님은 "가영인 피아니스트보다는 소아과 의사를 해보는 게 어때?"하고 말씀하셨던 게 잊히지 않는다. 그 말인즉은 음악적으로 천부적 재능이 보이질 않으니 다른 꿈을 가져보는 게 더 낫겠다는 의미였을텐데, 난 피아노를 접한 7살 때부터 중 3 때까지 줄곧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다. 반짝이가 가득 달린 벨벳 원피스를 입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로 무대 위에 올라 소나타를 연주했던 첫 무대의 짜릿한 긴장감과 사람들의 박수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겐 사카모토 씨가 첫 작곡을 했을 때의 그 강렬한 체험과도 비슷한 경험이었다. 기껏해야 학원생과 그 가족들이 관객의 전부였지만 '세상의 주인공은 야'라는 황홀한 기분에 젖어 피아니스트를 향한 꿈은 고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이어졌다. 어찌 보면 피아노 연주보다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좋았고, 발표회 때마다 입었던 화려한 원피스가 좋았던 허영심이 가득 찬 꼬마 숙녀였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피아노를 그만두게 된 건 연주회 때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다 트릴(음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꾸민음) 부분이 꼬이면서 몇 초간 피아노 앞에 멍을 때린 후 무대를 내려왔던 게 결정적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비록 꿈은 접었지만 유년 시절 엄마와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을 연습하며 듀엣 무대에 올랐던 던 일과 일주일에 두 번 피아노 개인 레슨을 받으러 다니던 기억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음악을 향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직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내 삶 속에 음악이란 아주 가끔 엄마와 함께 음악회와 가는 정도일 뿐, 굳게 잠긴 자물쇠처럼 단단하게 닫혀있었다. 워킹맘으로 기자생활을 하면서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내 눈과 귀는 음악을 듣는 일보다는 그림을 보는 일에 더 끌렸다. 기자가 된 후에는 미술관에 가서 가만히 작품 앞에 서 한 참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는데 특히 비 오는 날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다 보면 청승맞게 눈물이 나곤 했다. 지금도 가끔 그러지만...


어쩌면 기자의 삶이 벅찼던 것 같다. 아이들이 조금만 티브이를 크게 틀어놔도 "소리 좀 줄여줄래?"란 말을 아주 자주 했을 정도로 소리에 민감했다. 그런데도 참 아이러니한 건 승진에서 몇 번 물을 먹고 또다시 만년 대리를 해야 하나란 좌절감과 함께 열이 뻗쳐 미치기 직전 내가 퇴근 후 제일 먼저 간 곳은 악기점이었다.

"첼로 주세요."

"처음이세요? 어떤 걸 원하세요?..."

"그냥 첼로 배우려고요. 그렇게 비싸지 않고 소리가 예쁜 걸로 주세요"

쌈짓돈 100만 원을 주고 첼로를 샀다. 첼로를 배우면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첼로를 배웠던 그 시절처럼 마냥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무작정 첼로를 사고 레슨 받을 곳을 알아보고 일주일에 한 번 나에게 온전한 시간을 내어주는 일. 악기를 꺼내 활에 송진을 문지르고  서툴러도 첼로 선율을 온몸으로 느끼는 일. 그런 시간을 내게 주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운전을 하다가도 흥얼거리는가 하면 길가에 나뭇잎도 오선의 음표처럼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첼로를 꺼내본 적이 없다. 화장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하얀색 첼로케이스를 볼 때마다 언제나 열어보나 눈길을 좀 줬다가도 그뿐이었다.


그런데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내 오감이 서서히 꿈틀 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오늘 일들로 가득 차 최근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는데 책을 읽는 동안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Merry Christmas. Lawrence'와  'Rain' 등을 들으며 내 안에 음악적 영감을 끌어올렸다.  작가는 한때 자신을 드뷔시의 환상이라고 여길 정도로 그의 음악을 사랑했다고 한다.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달빛 아래 환하게 빛나는 벚꽃 길을 걷는다. 여느 해보다 아름답고 차분한 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클래식부터 팝, 민속음악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호기심과 열정, 음악뿐 아니라 그리고 대자연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자세, 지구의 환경, 세계 각국의 정치적 변화까지도 기민하게 반응해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그를 보면서 역시 대가는 다르구나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인간이 자연을 지킨다,라는 식으로 우리는 말하곤 한다. 환경 문제를 언급할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건 발상 단계에서부터 잘못짚은 말이다. 인간이 자연에 거는 부하(負荷)와 자연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패자가 되는 쪽은 당연히 인간이다. 즉 난처해지는 쪽은 인간이지, 자연은 전혀 난처하고 말 것도 없다. 자연의 거대함, 강함에서 보자면 인간이란 정말 한주먹감도 되지 않는 소소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 여행 내내 얼음과 물의 세계에서 보내면서 끊임없이 느꼈다. 그리고 인간은 이미 없어도 좋을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그린란드에 갔을 때 느꼈던 체험 중에서-


음악 전공자나 영화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인상 깊게 읽었을 것 같다.

일주일에 좋은 책 한 권을 읽으며 내게 찾아오는 변화가 켜켜이 쌓여 내 삶에도 근사한 변화가 이어지기를.... 류이치 사카모토의 'Flower'가 어울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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