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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Apr 21. 2024

<언제나 책봄>'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 대해

요즘은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엊그제 주말인 거 같은데 어 하다 보면 벌써 수요일이나 목요일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요즘 날 붙잡고 있는 건 <언제나 책봄>. 지난 17년 간 기사 마감에 그렇게 시달렸으면서도 연재 마감이란 걸 자청하는 걸 보면 난 분명 기자란 직업을 사랑했고, 마감이란 구속 자체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일주일 중 하루! 생활 속 루틴을 만들어주니 어느 정도 긴장감도 흐르고 내가 살아있는 기분도 든다.

아직 책을 정하지 못해 기웃거리고 있는데 마침 수요일에 충북교육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교육가족 북콘서트 <법의학자의 시선> 이 있다. 2019년 기준 전국에 마흔 명 밖에 없는 법의학자 유성호 씨가 강연자로 나선다.

호기심이 불타올라 북콘서트 몇 시간 전 sns에 충북교육도서관 홍보 겸 나도 보러 간다고 자랑을 했다.

그런데 게시물을 올리자마자 전 회사 직장 상사인 보도 국장이 '웃겨요' 표시를 누른 게 아닌가? 그래서 바로 댓글을 달았다.

"국장님 왜 웃으세요? ㅋ 보고 싶어요. 건강 챙기시고요" 바로 대댓글이 달렸다

"임가영 웬 법의학ㅋ 사건기자 컴백할껴?ㅋ" (국장님은 전형적인 충청도 사투리를 잘 쓰신다.)

"ㅋ 여러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서요 ㅋㅋㅋㅋ 사건기자는 노노노노노노노 ㅋㅋㅋ 국장님 목소리가 가끔 생각나요"라고 적고 한참 옛 생각에 젖었다.


16년 전쯤인가? 경찰의 날 특집기사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카메라 기자와 상의 끝에 'vj 특공대' (지금은 있나 모르겠다) 경찰 24시 밀착 동행 취재를 기획하고 지방청 형사분들과 경찰 봉고 차량에 탑승했다. 그때 처음 시체란 걸 봤는데....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하다.

보통 가정집과는 묘하게 다른 분위기 주택에 알몸의 여자 시신이 누워있다. 괜찮은 척, 쫄지 않은 척, 담담한 척했지만 내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어스름한 시각 현장 스케치를 하고 주변을 살피는데 동네 주민이 말한다.

"참 꺼림칙해. 죽은 여자가 무당이었잖아요."

그 당시 난 종교가 없었지만 마음속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하나님 소금 같은 건 뿌릴 틈이 없는데 제게 마음의 평강을 주십시오"

8~9년 전쯤 주말 당직을 하는데 국장에게 전화가 왔다. 00군 한 토굴에 토막시체 유기 사건이 났는데 현장 스케치를 해오라는 거다. 어차피 오늘 뉴스 마감 시간도 지나서 기사화가 안될 텐데 왜 가라는 건지? 카메라 기자와 꾸덜거리며 물어물어 00군에 갔다. 까만 밤 시골 동네 주황색 슬래트 지붕 위로 깃발이 펄럭인다. 또 무당집인가 보다. 예전에 첫 시체를 봤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와 팔다리에 소름이 돋는다. 대문을 똑똑똑 두드리니 50대쯤 보이는 여자가 나온다.

손가락으로 멍하니 옥수수 밭 뒤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기가 토굴이에요. 밤이라 못 가실걸요"라고 설명해 주는 그 여자의 걸쭉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눌려 저절로 두 손이 공손해졌다.

카메라 기자에게 "못 찾겠는데 그냥 대충 스케치만 하고 갈까? 도대체 토굴을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투덜거리던 차에 마침 C방송사 통신원 분이 도착했다.

"기자님이시죠? 저도 그 토굴 현장 가시는데 함께 가시죠."

'헐... 난 마음에 준비가 안 됐는데...'

C통신원 분이 터벅터벅 음습한 토굴 안으로 들어가자

울 회사 카메라 기자도 뒤따라 간다.

'에잇! 여기 혼자 있는 건 더 무섭잖아.'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그 뒤를 따라간다.

그때 마침 울리는 전화벨

"임기자! 현장 찾았어?" 국장 전화다.

"네 근데 여기 정말 으스스해요. 귀신 나올 것 같아요." "가영아 네 뒤에.. 네 뒤에"

소스라쳐 놀라서 뒤를 돌아본 순간 동굴  종유석 같은 거에 머리를 살짝 부딪쳤다.

얼마나 놀래서 소릴 질렀던지... 수화기 너머로 '허허허허허' 웃던 그 국장.


그 국장이 "사건기자 다시 할 ?"라고 묻는다.

돌이켜보면 웃음만 나온다. 가끔은 찰지고 맛깔스러웠던 국장님의 충청도 스타일의 욕 한 바가지 그리울 때도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비 내리는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북콘서트장 객석이 꽉 찼다.

정말 똘똘하게 생긴 남학생부터 학부모, 교직원 등 다양게 모였지만 관객 대부분은 30대 후반부터 50대가량의 여성들이다. 시체 해부, 리얼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CIA법의학자가 출연한 미드(미국 드라마)를 상상하며 기대에 부풀었던 나와 달리 내 손에 이끌려 함께  b의 표정은 덤덤하다.

강의 내용을 녹화해 방송으로 내보내야 하는 방송사 조연출은 미리 관객 손뼉 치는 모습과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이는 모습을 찍기 위해 설명이 한창이다. 너스레를 떨며 현장 분위기를 유도하는 조연출의 지시에 객석의 사람들은 마치 강연을 다 듣기라도 한 것처럼 사믓 진지해져 잘 따라 한다. 난 또 그 모습에 웃음이 나 혼자 웃음이 터진다. 마음을 가라앉히자 유성호 법의학자가 무대에 올랐다.

"저는 매주 두 번 시체를 보러 갑니다."

일단 중저음의 목소리 자체에 신뢰감이 갔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기 직전 들었던 법의학 수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어떤 한 페이지의 시간이, 자신의 삶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모르기에,

인생은 살만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날 강의하신 교수님께서 그러시는 겁니다. 지난 10년 법의학 하겠다고 찾아온 제자가  명도 없었다고"

그날 인상 깊게 수업을 들었던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법의학자에 길로 나선다.


<법의학자 가방엔 누군가의 일생이 있다>
검시란 시체에 대한 조사 행위를 총괄해서 이르는 말인데, 검시는 다시 검안(檢案)과 부검(剖檢)으로 나뉜다.
검안은 그야말로 시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며,.. 중략...... 부검은 해부를 통해 종합적으로 사인을 규명하는 작업을 말한다.


죽음이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자 객석은 어느새 숙연해진다.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느끼며 강연을 계속 듣는다.


강연자는 부검에 대해 '숨이 빠진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고 성숙하는 일이며, 언젠가는 내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일이라고...

시체 해부 사진이 강의 자료 화면에 띄워지자 객석 곳곳에서 "어머.." 하는 작은 탄성이 들린다.

시체의 장기를 눈으로 본다는 사실, 사진인데도 불구하고 나름 사건 현장을 다녀 본 나조차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물며 매주 시체를 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자의 기분은 어떨까? 잠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다가

다시금 강연자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법의학자는 부검을 통해 억울한 자의 죽음을 알리기도 하지만 시체를 관찰하고 연구하며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NCIS나 CIA 미드 속 법의학자 이미지에만 과몰입해 극적인 사건 진행 과정이 강의 대부분 일 것이라 짐작했던 것과 달리 강의 전반은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요소가 더 짙었다.


집에 돌아와 종이책으로 법의학자 유성호를 다시 만났다.

강연과 독서의 차이, 매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좋은 계기였다.

좋은 목소리와 생생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강연자를 만나는 일은 정말 매력적이지만

나의 경우엔 책으로 만나는 법의학자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가슴에 와닿았다.


<우리는 왜 죽는가>, <사회를 바꾸는 죽음>, <'죽을 권리'와 '살릴 의무'> 등을 읽으며

연명 치료에 대해,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장례 절차에 대해,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 등에 대해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거에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을 알고 "죽음은 서늘한 여름과 같다"는 말도 할 수 있었고...... 중략...... 그러나 지금은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를 남길 틈도 없이 병원에서 아무런 준비나 의식 없이 마지막 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럼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사실상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함에도 환자와 가족은 '죽음'을 두고 대화하지 않는다.


작가는 '죽음은 실패가 아닌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말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죽음 이후를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마흔다섯, '나와는 먼 얘기야'라고 생각했던 죽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곱씹어 보는 시간,

언제 누가 먼저 떠날지 모르기에 이 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


그리고 난 이 책을 읽고 연명 치료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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