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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May 05. 2024

<언제나 책봄>'발견의 여행'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여행하는가?

브런치에 <언제나 책봄>연재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났다. 그동안 연재를 하면서 피곤에 쩔은 날엔 귀찮기도 하고, 내가 왜 시작해서 신세를 볶나 하는 순간도 솔직히 몇 번 있었다. 하지만 한두 번을 뺀 나머지 시간들은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더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책과 현실을 넘나들며 깨달은 생각과 재미, 이번 주도 책 한 권을 읽었구나라는 만족감이 온몸에 차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는 먹다 남은 치킨 뼈와 김 빠진 콜라가 식탁 위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는 듯한 거지 같은 기분이 목구녕까지 차 올랐다. 그 이유를 시시콜콜하게 여기다 적을 순 없지만 분명한 건 나의 글쓰기는 공무시간이 아닌 주말에 글을 쓰고, 물론 겸직 신고도 했다.

매주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게 루틴이 됐지만 이번 주는 여유가 안돼 출퇴근길에 오디오북으로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반절이상 읽지 못했고, 남은 분량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데 순간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거다.

마음을 가다듬고 반쯤 누운 자세로 스티븐 페이브스의 '발견의 여행'을 읽어 내려간다. 이 책을 고른 거 보면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이런 변화무쌍하고 대단한 여행이라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영국 세이트토머스병원 응급의학과 의사인 저자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 2010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75개국, 86,000여 킬로미터, 지구 두 바퀴를 자전거로 여행했다. 이 글은 '가디언', '텔레그래프'에 게재됐으며 그의 여행은 CNN, BBC 등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세계 곳곳을 자전거로 횡단하면서 죽음의 위기를 모면한 극적인 상황, 인간이 표현하기에 모자란 경이로운 평경, 지금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빈민국과 난민들의 처절한 현실을, 호기심 가득한 여행자의 시선을 너머 의사의 시선으로 기록했다. 작가이자 응급의학과 의사인 남궁인 씨는 이 책 추천사에 이런 글을 썼다.


이런 여행담이 화제에 오르면 누군가는 반신반의하고 누군가는 경악한다. 그런데 무려 이 책의 작가가 다녀온 실제 여행 루트다..... 이 여행자는 내가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듣고 본 여행자 중에 가장 미쳤고, 이 여행기 또한 동시대의 사람이 쓴 것 중에 가장 미쳤다. 이 장대한 기록에서는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환희와 절망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체험할 수 있다. 혼란스럽고 장황하지만 여행 기간에 비하면 차라리 압축된 것 같은 대서사시다. 온몸으로 여행하는 그를 통해 이방인으로서의 현장감이 전해진다.   


작가는 여행을 하며 처음에는 고독이 버거웠다고 한다. 그럴 때면 살아온 세월을 뒤로 길게 펼쳐 기억들이 다시 표면으로 올라오게 내버려 두었다고. 해질 때면 환자들을 떠올리기도 했고.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만 같은 고독과 외로움이라면 어찌 견뎌볼 만했지만(글은 이렇게 쓰지만 닥쳐봐야 알 것 같기도) 빈대가 득실거리는 침대와 뎅기열에 감염돼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부분 등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나라면... 나라면... 특히나 겁 많은 나라면 절대 불가한 영역이야 하며 입을 몇 번이나 떡 하고 벌렸다.

여행 도중 무릎 부상을 겪은 일, 총을 든 군인들이 위협을 가할 때, 방금 전 자전거로 지나온 그 길에 간발의 차이로 산사태가 일어났을 때, 인간 극한의 한계를 넘어선 '번아웃' 직전의 생생한 체험담 뒤에는 뭐가 있을까?

흥미진진해져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내가 느꼈던 사사롭고 불쾌한 감정들도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거다. 기분의 전환, 복잡한 일상을 단순화시키는 힘, 책을 읽는 이유.


그리고 의료 파업이 한창이라 더욱 안타까운 요즘,

세계 75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바라본

의사로서의 그의 시선은 인간에 대한 존엄함, 존귀함이 담겨 있어 더욱 마음을 울렸다.


우리의 건강은 부와 가난에서 우리 행성의 건강, 우리가 누구를 친구라 부르고 누구를 배제하는 가에 이르기까지 서로 상호작용하는 무한한 힘들에 의존한다. 어쩌면 진짜 싸움은 바이러스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것, 과학과 정보를 무기 삼아 공감과 존중을 확대하고 신중함과 희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면 많은 것을 함께 이룰 수 있음을 깨닫는 것에 있을 것이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6년간의 여행을 마친 그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었을까?

그렇다면 무엇일까?

멋들어진 명언이 나올까? 또 다른 여행을 다시 떠날까?

하루하루가 사건사고의 연장선 같은 혼란스럽고 복잡한 여행길에서

결국 그가 돌아온 곳은 환자 곁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응급실에서 일한다. 대기실로 들어가 환자 이름을 크게 부른다.
................ 우리는 칸막이 친 간이 진료실 안에서 각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직 왜 병원에 왔는지, 우리가 도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의자를 당겨 앉으며, 그에게 부탁한다.
"자, 제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가의 마지막 말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작가님처럼 장대한 목표는 아니어도 포기하지 않고 매주 책 한 권씩 읽고 글을 써볼래요.

그리고 그 여정 동안의 이야기를

나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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