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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May 19. 2024

<언제나 책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어렴풋이 화자의 삶을 엿본 느낌

책꽂이에 꽂힌 수많은 책들 가운데 가끔 머리가 뿌연해지는 책들이 있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감동의 여운이 오래가는 책도 있지만 아주 희미하게 잔상으로만 남을 뿐 구체적 내용이나 책의 전개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후자이다.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분명 당시에는 인상 깊게 읽었는시간이 좀 지나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문단을 읽고 주인공 이름과 배경을 떠올리면 보통 기억이 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서너 장을 넘기고도 어렴풋이 화자의 동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일 뿐이다. 결국에는 지난해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읽었다.


혹 여기서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최은영은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제5회 젊은 작가상, 제8회 허균문학작가상 등수상한 실력파 작가이다.

소설가 권여선은 이 작품에 대해 "희미한 빛을 찾아 어두운 허공을 오래 찬찬히 응시한 자의 고요한 열기를, 마치 한 자루의 초에 불을 붙이고 그것이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행위와 같은 경건함으로 그려낸다. 이런 문장은 당해낼 길이 없다. 나는 늘 최은영에게 다른 것을 바란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늘 이것을 바라왔다는 걸 깨닫는다. 비슷한 것 같지만 읽을 때마다 생판 다른, 최은영은 그런 작가이다."라고 표현했다.


아마도 내가 기억을 잘 못 하는 건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도 슬퍼서, 그녀들이 겪는 상황이 기가 차다 못해 어이없고 화가 나 애써 내 기억 속 저 멀리로 꾹꾹 구겨 넣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는 사회부 시절 접했던 사건사고 중 단신에는 다 쓸 수 없지만, 이로 인해 내가 알게 된 이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너무나 담담하게 서술돼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속도감 있게 주인공들을 따라가다 멈칫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우울감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 책은 최은영 작가의 중단편 소설 7편으로 구성됐다. 각각 소설 속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은 여성이란 공통 점이 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나는 비정규직으로 은행에 근무하다 스물일곱에 대학교 3학년에 들어온 학사 편입생이다. 나는 영문에세이를 가르치는 강사의 수업을 듣게 된다. 표면적으로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내겐 아직 어색한 '생리'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로 나와 그녀(강사)는 가까워지게 된다.


그녀의 집으로 가면서 우리는 생리를 하다 겪은 곤란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강의실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이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조금은 녹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피 묻은 바지를 갈아입기 위해 개인적으로 처음 이야기해 본 강사의 집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의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그녀가 뜻밖의 말을 했다.
"저번주에 낸 에세이 재미있었어요"


둘의 공통 매개체에는 용산이란 도시가 있다. 그리고 '용산 재개발 구역 참사'

용산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자신의 책 속에서 용산을 묘사한다. 나는 그녀의 에세이에 나오는 그 도시를 회상하며 어쩔 수 없는 친밀함과 동질감을 느낀다.


'그곳은 용산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그녀는 이어서 이렇게 썼다. 페이퍼백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그 글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나는 그곳을 언제나 떠나고 싶었지만, 내가 떠나기도 전에 내가 깃들었던 모든 곳이 먼저 나를 떠났다. 나는 그렇게, 타의로 용산을 떠난 셈이 되었다'라고 썼다.

 

용산과 관련한 뉴스를 보면서 그저 안타깝다고 얼굴만 찡그렸던 나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가슴 한 곳에 상처를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세상 속에서 차별받던 순간들에 대해서 소설 속 나와 그녀가 나눈 대화는 왠지 씁쓸함이 밀려온다.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세상 탓하면서 해소되지도 않을 억울함 느끼는 것 바라지 않아.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 그냥 무시해 버렸으면 좋겠어.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상처의 원인을 헤집으면서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다음 문장이 어떻게 완성되었을지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어떤 문장이든, 그녀는 내가 자신보다는 나은 경험을 하기를, 자신이 겪었던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자 힘이었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자신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겪는 부당함을 인지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 마음이 그녀를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동의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난 여자로 살면서 느꼈던 부당함이나 차별, 그로 인한 상처가 있었나?

물론 있다. 외부 회식 자리에서 술이 과해지면 가끔 문제를 일으키는 인간들이 종종 있는데, 선을 좀 넘는다 싶으면 난 똑 부러지는 표정과 말투로 "여기서 조금 더 가시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한 술 더 떠서 옆에 함께 자리했던 분들께 "증인 서 주실 거죠?" 그리고 잠시 뒤 "전 오래 뵙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 뒤 2~3초가 지나면 어색했던 분위기도 다시 진정이 되곤 한다.


살면서 여자라서 힘들었던 일, 차별받았던 일들을 깊은 상처로 안고 살기보다는 훌훌 털고 일어나자. 내가 가진 여성성으로 세상을 섬세하게 바라볼 있음에 감사하고,

모성의 강인함으로 세상 앞에서 더 당당하고 강인해지기를...

물론 자신 안의 상처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공론화를 하고,  바로잡는 일들을 해왔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좀 더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 이름 모를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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