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화자의 삶을 엿본 느낌
그녀의 집으로 가면서 우리는 생리를 하다 겪은 곤란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강의실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이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조금은 녹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피 묻은 바지를 갈아입기 위해 개인적으로 처음 이야기해 본 강사의 집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의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그녀가 뜻밖의 말을 했다.
"저번주에 낸 에세이 재미있었어요"
'그곳은 용산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그녀는 이어서 이렇게 썼다. 페이퍼백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그 글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나는 그곳을 언제나 떠나고 싶었지만, 내가 떠나기도 전에 내가 깃들었던 모든 곳이 먼저 나를 떠났다. 나는 그렇게, 타의로 용산을 떠난 셈이 되었다'라고 썼다.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세상 탓하면서 해소되지도 않을 억울함 느끼는 것 바라지 않아.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 그냥 무시해 버렸으면 좋겠어.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상처의 원인을 헤집으면서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다음 문장이 어떻게 완성되었을지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어떤 문장이든, 그녀는 내가 자신보다는 나은 경험을 하기를, 자신이 겪었던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자 힘이었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자신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겪는 부당함을 인지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 마음이 그녀를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동의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