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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ug 05. 2024

허송세월

김훈, 나남, 2024.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듣고, 동네 도서관에 희망 도서 신청을 했다. 신청은 받아들여졌는지? 언제쯤 입고될지? 등등 그야말로 허송세월하던 중, 큰딸과 들른 제주의 작은 책방에서 딸에게 선물로 받았다.     


나는 산문을 잘 읽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는 잘 읽지 못한다. 아마 짧은 글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리라. 연륜과 재주가 있는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나쁠 리 없지만, 나의 독서는  산문 보다 독자의 유영 공간이 많은 소설에 집중된다. 하지만 작가의 산문이라면?      


허송세월이라고 한 작가의 시간에서 한번, 임진강을 배경으로 찍은 듯한 작가의 흑백사진에 또 한 번 세월을 느끼며 책을 펼친다. 작가는 다양한 소재로 글을 썼지만 늙어감의 부대작용인가, 유독 어린 시절의 회상에 이은 청춘을 예찬하는 글이 자주 나온다.     


‘엄마는 늙어서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도 6.25 때 피난 가던 얘기를 자주 했다. “훈아, 그때 내가 너를 어떻게 업었는지 아니?” 엄마는 포대기 끈 묶는 시늉을 했다. 나는 울었다’(본문 p113,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중).      


‘정치(썩어빠진) 현수막 아래서 키스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략) 주말에는 키스 구경하러 현수막 나붙은 세종로에 가려 한다’(본문 p210, 키스를 논함 중).  

    

스물한 살에 「네거리의 순이」를 발표한 월북 시인 임화, 스물네 살에 소설 「광장」을 발표한 최인훈 그리고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 등의 청춘을 이야기하며 작가는 ‘그들은 전쟁 이후 70년의 세월을 짐작할 수 없었을 것’(본문 p109, 적대하는 언어들 중)이라고 한다.    

  

1909년 10월 19일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에서 하얼빈 열차를 탔던 서른한 살 동갑내기 안중근과 우덕순(본문 p95, 시간과 강물 중). 1831년 비글호에 올랐던 스물여섯 살의 해군 장교 로버트 피츠로이와 스물두 살의 찰스 다윈(본문 p224, 청춘예찬 중). 1784년 함께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푸르고 빛나는 청춘의 날에 정약용은 스물두 살, 그의 형인 정약전과 이승훈은 스물여덟 살 그리고 이벽은 서른 살이었다(본문 p229, 청춘예찬 중).      


그렇게 작가는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아름답고 강력한 청춘을 예찬한다. 나 또한 그들의 청춘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이에 비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치열했던 나의 청춘을 쓰다듬는다.    

  

좋은 책을 읽으며 행복해지는 점 중의 하나는 또 다른 좋은 책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 책으로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쓴 작가의 「하얼빈」(2022)을 읽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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