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들린 밀러, 이봄, 2018. 이은선 역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딧세이아에서는 트로이아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를 이야기한다. 바다의 님프 테티스와 신실한 사람이었던 프티아의 펠레우스 왕을 부모로 둔 아킬레우스. 테티스는 인간인 그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갓난 아킬레우스를 스틱스강에 담그지만, 테티스가 잡고 있던 발뒤꿈치 부분은 담기지 않아 취약점이 되었다는 아킬레스건 전설의 당사자 아킬레우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영화 트로이의 아킬레우스 「브래드 피트」를 떠올린다. 깊고 푸른 눈, 단단한 턱 그리고 눈부신 금발의 브래드 피트는 「아킬레우스」 그 자체였다. 영화의 짜임새고 뭐고, 나는 영화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킬레우스를 보는 것만으로 영화는 제 몫을 다 했다고 느꼈다.
영화에서 파트로 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사촌 동생으로 알려진 인물로 영화 내내 별 존재감 없다. 전쟁 말미에 아킬레우스가 전쟁을 보이콧하면서 아가멤논이 사령관인 아카이아 연합군은 궁지에 몰린다. 이때 파트로 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군장을 착용하고 전쟁에 참여한다. 물론 영화라서 그러하겠지만 적군과 아군 모두 아킬레우스가 참여했다고 환호하는데, 나는 아무리 군장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가렸어도 아킬레우스가 아닌데 저걸 모를 리가 있나? 하는 푸념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나 영화에서도 존재감이 없던 파트로클로스. 그가 이 책에선 화자가 되어 아킬레우스와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트로이아 전쟁을 이야기한다.
펠레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그 아이(파트로클로스)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아킬레우스는 “놀랍기 때문입니다.” (본문 p53)라고 답한다. 나는 이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글 속에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둘은 놀라운 사랑과 우정을 쌓는다. 나는 그를 당당히 쳐다볼 수 있다는 기적을, 그의 팔다리 위에서 아롱거리는 햇살과 물속으로 뛰어든 그의 둥그스름한 등을 감상할 수 있다는 기적을 만끽했다.(본문 p135)
그 당시는 신과 인간의 교류가 잦아 인간과 신이 결혼을 하기도, 인간 전쟁에 신이 개입하기도 했다. 트로이 전쟁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르테미스, 아테네, 아폴론 그리고 제우스까지 개입한다. 파리스는 조준한다.
'신(아폴론)이 손끝으로 화살깃을 건드린다. 그런 다음 민들레 홀씨를 장난감 배를 밀 듯 훅 하고 숨을 내뱉는다.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며 아킬레우스의 등을 향해 소리 없이 똑바로 날아간다.' (본문 p448)
아킬레우스의 묘석에 새겨진 그림은 멤논을 죽이고 헥토르를 죽이고 펜테실리아를 죽이는, 모두 살육뿐이다.(본문 p463) 우리(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찾아온 테티스를 향해 파트로클로스는 ‘그의 이야기를 그보다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세요.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에게 돌려줬잖습니까. 그리고 리라를 연주하는 솜씨도 훌륭했죠. 목소리도 듣기 좋았고요. 다른 왕들 손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여자들을 데려왔고요.‘ 파트로클로스는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의 이야기, 신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으로 그와의 추억을, 행복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떠올린다. (본문 p465-466)
그동안 우리가 호메로스로부터 들은 바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겉으로 드러난 일부분이었음을 알게 된다.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놀랍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