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슬픈 소식을 들었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만나왔던 선배 한 분이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우리와 함께할 날이 많지 않다는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였다.좋아하고 존경했던 선배이고, 자주 얼굴을 보던 사이여서 - 코로나 오기 전에는 - 그 소식이 내게 더 크게 들려왔다.
그 소식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선배들은 어렵게 면회 기회를 잡아 그분과 대면을 했다는 후속 소식도 들려왔다.
그런데, 나는 면회를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두렵고, 자신이 없었다. 그를 보는 것이.아니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고심 끝에,나는 내가 기억할 그의 모습을 선택했다. 변해버린 그의 모습을 내 기억 속에 남기지 않기로. 그도 그것을 바랄지는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를 나는 '소크라테스 형'이라 부른다.내가 그에게 붙인 별명이다.
내가 본 그는 무엇하나 그냥 보고 지나가지 못했다. 그는 속까지 꿰뚫어 보고 해석까지 마친 다음 그것을 당신의 문법과 언어로 설명하고 나서야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생각이 소크라테스를 닮았다면,그의 행동방식은 칸트의 시간과 닮았다. 말한 것은 말대로 행동에 옮겨졌고, 약속한 것은 백 퍼센트 실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신이 참여한 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생각한 합리성을 벗어나는 것을 못 참아했다. 그래서 그는 늘 우리들의 심판이었고 디테일까지 제시해 주는 우리들의 현자였다. 우리들이 찾는 합리적인 답은 그에게 물으면 그만이었다.
문득,일박이일로 함께 설악산을 넘어갔던 산행에서 힘차게 앞장서던 리더의 모습을 한 그가, 스크린 골프 한 게임을 지기 싫어서 혼자서 몰래 연습장을 거르지 않고 드나들었다던 욕심쟁이 열정남 그가, 게임 룰 하나를 놓고 티격태격하던 우리들에게 모두 다 납득할만한 해답을 주던 국제심판이었던 그가,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두세 달 전이었다.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밥 한 끼 사고 싶은데...”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서 같이 골프를 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런데, 운동 후 저녁 밥값을 대신 계산하고 내게 알려주면 좋겠어. 부탁할게.”
그러고선, 코로나 팬데믹 덕분에 병원 수입이 오랜만에 올랐다나? 평생 제대로 밥 한 끼를 대접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나? 그러니 이번 기회에 자기가 밥을 살 수 있게 해 주라나?
주절이 주절이 갖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그는 결국 우리에게 밥 한 끼를 샀다.
그날 우리는 그냥 맛있게 그 밥을 먹었다. 속도 없이 소크라테스가 사는 밥과 술은 더 맛있다며…
그 속없는 밥을 먹고 나서 며칠이 지난 다음, 나는 그 나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즈음 그와 통화를 했다.
전화로 만난 그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여전히 소크라테스 형이었다.그는 내게 말했다.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갈 것 같다고. 마지막까지 맑은 정신을 잃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이만하게 산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나도 담담하게 답했다.
사람은 다 살다가 돌아가는 거라고. 조그마한 시차가 존재할 뿐이라고. 결국 다 다시 만날 거라고...
우린 그렇게차분하게 통화를 끝냈다.
전화를 끊고 난 혼자서 중얼거렸다.
“형 답네...”
그래도 눈앞이 뿌예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난 그를 만날 수가 없다.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힘겹게 그 다운 그를 표현했을,그 마음을 알겠기에,난 그의 그 다운 모습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난 핑계를 그렇게 잡았다. 겁이 나고, 두려운 것을 그렇게 핑계로 나의 회피를 덮었다.
그가 바라는 대로, 그 소크라테스 형은 늘 그랬던 것처럼 끝까지 내게 멋있는 선배로 남겨질 것 같다.
물론, 나는 그에게작별 인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대로 흘러가는 세상을 보았는가?"
"예상대로 진행되는 인생을 보았는가?"
세상에는 내 생각을 뛰어넘는 일들로 차고도 넘치고, 소크라테스 형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갔던 것들이 많고도 많았다. 그러니, 내가 작별 인사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