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무실에서 업무로 상급기관의 담당자와 통화할 일이 있었다. 통화하는 중에 나와 상대방 사이에 이견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통화가 좀 길어졌다. 어쨌든 긴 대화 끝에 통화는 별 탈없이 끝났다.
통화가 끝나고 뒤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팀의 팀장이 내 뒤에 서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팀장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별 거 아닙니다. 간단히 한 가지만 확인하려 한건 데 말이 길어졌네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의 대답을 들으며 팀장은 웃음 반 걱정 반이 뒤섞인 듯한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한 마디를 더했다.
“제 말투에서 예전 버릇이 나왔나 봅니다?”
"예, 국장님 오신 줄 알았어요."
팀장은 늘 하던 대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며 자기 자리로 향했다. 그러다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내게 말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제게 말씀 주세요.”
“고맙습니다. 팀장님.”
팀장이 돌아가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가만히 생각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팀장이 내게 와 걱정을 던지는 걸 보니, 꽤 긴 시간 동안 몰입해서 말을 하다 보니 무심결에 예전의 말투가 나왔나 보다. 이제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위치에서의 생활에 다 적응했다고,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도 참, 아직도 멀었나 보네.”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은 씁쓸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냉수를 한잔 따라다 마시고 있을 때,
“드르륵”
책상 위에 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보니 팀장으로부터 온 카톡 메시지였다.
‘일하시다 불편하시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제게 꼭 말씀해 주세요. 혼자 고민하시지 말고요.‘
순간 가슴이 뜨끈해졌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울타리가 주는 따뜻함이었다.
나는 버튼을 꾹꾹 눌러 답장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럴게요.’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누구 도움이 아니지, 수양이 필요한 거지.”
내가 지금의 일- 공무원 2년 엿보기 -를 시작한 지는 몇 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내가 이 일을 시작할 때 가졌던 의미가 다시 떠올랐다. 이 일로 내가 만나고자 했던 것들 말이다.
나이가 들면 과거에 대한 대화가 많아진다. 그 대신 내일을 이야기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문제의 ‘나 때는’이라는 말도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간 내가 ‘미래’를 이야기한 경우는 대부분 딸들과 이야기하거나 딸들의 이야기를 할 때였다. 나는 '내일'을 이야기하는 딸들과의 대화가 좋았다. 그 연장선에서 미래를 만나는 방법이 청년들을 만나는 것이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년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나섰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청년들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고, 청년들과의 대화는 나를 '과거'가 아닌 ‘미래’와 만나게 해 준다.
'내일'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처음으로 간부직원이 되었던 때가 헤아려 보니 벌써 스물여덟 해 전이다. 그때 이후 난 일선 업무에서 멀어져 갔다. 손이나 발을 쓰기보다는 입을 쓰는 일이 대부분을 차지해 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손과 발이 무디어져 나중에는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져버렸다. 반면에 나이가 들면서 혼자서 해결해야 할 상황은 오히려 많아진다. 손과 발로 혼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손과 발에 피가 잘 돌게 해야 한다. 손과 발이 다시 작동하게 하는 것은 일선 업무로 돌아가 일하는 것이 그 지름길이다.
'일선'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수십 년을 회사라는 조직생활을 하였다. 회사의 일원이 되고 나서는 혼자 행동하는 것이 거의 없어졌다. 점심 한 끼를 먹더라도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했다. 그러한 세월이 지난 후 길지 않았던 '개인인 나의 홀로서기’를 경험하면서, 조직생활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예전 조직생활에서의 내 위치와 역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조직생활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각으로 그 맛을 음미해 볼 생각이었다. 이게 마지막일 수 있으니 소중히 다뤄야 한다.
조금 다르게 조직생활의 순간들을 음미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기세 좋게 시작한 조직생활인데, 어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어제 같은 일이야 목표했던 조직생활을 하는 과정 중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다만, 그것이 내게 던진 의미는 아직도 '내가 바라는 나'와 '오늘의 나'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를 확인하는 것이 씁쓸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멀었다. 더 많은 수양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쯤 ‘추억 속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아직도 세월을 더 보내야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