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시간과 화해 중

내면여행을 떠날 때

by 투빈대디



인생의 한 고비를 넘고 어느 즈음인가 '그때'가 된 때부터는 나이가 더해질수록 온전히 내게 주어지는 시간은 늘어간다. 아직 출근족이라도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누구나 그때를 만난다.


출근과 퇴근 시간 그리고 하루 중 대부분을 차지하던 업무시간이 사라지고, 빈 시간이 그 공간을 채운다. 저녁시간을 늘 채우던 외부의 식사자리, 술자리가 점점 줄어든다. 외부 모임이나 만남이 하나씩 하나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신 나만의 저녁 시간이 그 시간을 채운다.


어렵사리 만들어가던 아이들과의 시간도 아이들이 다 성인이 돼버린 이제는 필요가 없어진다. 내 바깥의 시간을 통제하아내도 이제 그 컨트롤 키를 놓아 버리고, 벌써 익숙해진 그녀만의 시간 곁으로 가버린다. 그렇게 남겨진 시간도 이제 나만의 시간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어느새 한겨울 지붕 위에 눈이 쌓이듯 두꺼워진 시간은 그 무게가 점점 더해져서 어떻게든 쌓인 시간을 쓸어내려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쌓인 시간의 무게를 지붕이 지탱하지 못한다.


맘먹고 쌓인 시간을 치우려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함께 시간을 치워줄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직장 동료나 사회에서 만났던 지인은 이제 연락하기가 어색하고, 친구, 자녀, 아내도 이미 내 시간을 줄여주던 사람이 아니다. 그들 모두 쌓인 시간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때'라는 때가 되고 나면,

혼자가 기본이 되고,

혼자서 해결해야 할 것들 투성이다.

그때엔 '혼자의 싸움'이 필요하다.


혼자의 싸움에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별이다. 과거의 나와의 이별이다. 연인 간의 그것처럼 어렵지만 확실하게 결별해야 한다. 지나간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나와는 헤어져야 한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주저하지 말고, 바다 위 뱃전 끝에 올려놓은 한쪽 발로 몸의 무게중심을 확실하게 옮기며 육지의 부두 가에 놓았던 한쪽 발은 과감하게 들어 올려야 한다. 그래야 배에다 몸을 싣고 인생의 두 번째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 망설이다가 시기를 놓치면 가랑이가 찢어지며 그대로 바닷물 속으로 풍덩 빠지게 된다.


과거와 이별한 후엔 무엇이든 혼자서 하는 습관을 만들어 '혼자 하기'의 영토를 넓혀가야 한다. 혼자서 혼자인 내가 할 것들을 설계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내일에도 다시 만날 혼자인 나를 준비해야 한다.


이런 혼자 하기는 매일 떠나는 여행과 같다. 목적지가 나의 속인 내면 여행이다. 바깥세상을 보러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속안의 깊은 곳으로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이다.


내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내면 여행'은 그때를 만난 사람에게 딱 맞는 여행이다.


내면 여행은 굳이 누군가와 함께 할 필요가 없다. 혼자면 충분하다. 오히려 혼자가 더 좋다. 내면 여행은 쌓인 시간 중 큰 조각을 순식간에 삼켜 소화한다. 시간을 건강하게 소화시킨다. 그래서 내면 여행은 그때에 접어든 이에게 제격이다.


내면 여행을 하다 보면 내면의 세계가 넓고 깊은 세계임을 발견하고 놀란다. 바깥으로의 여행보다 오히려 더 다양한 여행코스를 만나게 된다.


내면 여행은 과거의 나를 다시 해석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오늘의 나에게 투영한다. 그 해석들이 쌓일수록 오늘의 내가 해야 할 행동과 갈 길이 투명해져 간다. 해석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오늘의 나는 한 뼘씩 더 성숙해져 간다.


가을의 햇살이 여름을 난 과실에 고은 빛깔과 단 맛을 더해 주듯, 내면 여행은 그때에 접어든 이를 그때에 맞게 잘 익혀준다.

내면 여행을 시작하면, 쌓인 나만의 시간이 오히려 달갑다. 그 시간은 내면 여행 열차의 연료로 쓰여진다. 내면 여행의 소요 시간만큼 쌓인 나만의 시간도 소진된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그때의 사람의 성숙도 더해진다.


그때를 만났다면
지금이 내면 여행을 시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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