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자유 한 뼘 늘이기
새벽에 카카오 택시를 호출했다. 골프채를 싣고 용산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택시는 친절하게 용산역 지상의 KTX터미널과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 주었다. 백팩을 멘 채 한 손에는 무거운 골프채가 든 가방 - 캐디백이라 불리는 - 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열차를 타는 플랫폼까지 걸어갔다. 기다리던 KTX 열차가 왔고, 난 골프백을 들고 열차에 올라 탑승할 객실의 맨 뒷 공간에 내 골프백을 세워 놓았다. (다행히 그 객실에는 맨 뒷 좌석 뒤에 골프캐디백 4개를 세워 놓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 KTX 객실에 따라 없는 경우도 있다.) 그것으로 내가 해야 할 수고는 끝이 났다.
골프백을 실은 KTX는 멀리 남도의 한 도시의 기차역에 도착했다. 그곳에 사는 속 깊은 친구가 마중을 나와 차에 내 골프백을 실었고, 내 몸은 자유를 찾았다.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내 드라이브를 한 바퀴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골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가져온 골프백 속의 골프 채는 제 역할을 했다.
다음 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 어제 내렸던 그 기차역에서 상행선 KTX를 탔다. 다시 백팩을 메고 골프백을 한 손으로 들었다. 이번 열차 객실 뒤에는 빈 공간이 없는 구조였다. 차선책으로 골프백 들고 객실과 객실 사이 연결통로에 있는 화물 보관 공간 - 캐리어나 덩치 큰 가방 등을 놓는 장소 - 을 찾았다. 짐을 올려놓는 선반 고정장치를 간단히 조작하여 해제시키니, 세워졌던 선반이 내려지고 키 큰 골프채도 그대로 세워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곳에 골프백을 세워놓고 나는 객실 안 내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들으며 스르륵 단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용산역에 내려 택시를 잡아 탔다.
그렇게 나의 첫 ‘ KTX로 골프 치러 가기’ 도전은 멋지게 끝을 맺었다.
이번에 KTX에 골프백을 싣게 된 것은 우연한 사고 때문이다. 내 골프백을 싣기로 했던 친구가 갑자기 코로나로 인해 동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난 급히 KTX에 골프채를 싣고 가기로 계획을 바꾸었던 것이다.
사실, 몇 시간을 운전하고 가서 운동을 마친 후 식사와 함께 술도 몇 잔 나누고 숙박한 후 다시 돌아오는 - 이튿날 골프를 한 번 더 치고 올라오는 경우도 많다 - 원거리 골프 여정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여행이다.
그러나 KTX에 골프채를 싣는 선택으로 얻은 육체적 심리적 자유의 크기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걱정 없이 맘껏 술을 마셔도 되고, 몇 시간을 운전대를 잡고 뻐근한 목과 내려앉는 눈꺼풀을 이겨내려 애를 쓸 일도 없어졌다. 그냥 열차 좌석에 편하게 앉아 음악을 즐기다 잠들면 되었다. 그런데다 소요시간도 반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엔 미안하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였지만, 오랜만에 만난 현지의 친구와 더 깊은 교감을 나눌 기회까지 덤으로 따라왔다. 기차역까지 차를 몰고 나와 내 골프백을 차 트렁크에 실어 넣고, 그 차로 함께 여기저기를 같이 다니다 보니, 저절로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내 차로 나 혼자 움직이던 때와는 너무도 다른 상황 전개였다.
KTX에 골프백 싣기를 선택하고 나니,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던 열차 안의 여러 공간들 - 골프백을 둘만한 곳들 - 을 찾아 알게 되었듯이, 운전으로 빼앗겨 왔던 시간과 마음의 여유공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시공간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우연한 상황이 그동안 내가 모르던 한 편의 자유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돌려준 것이다. 아마 앞으로는 내 차에 골프백을 싣고 먼 곳을 가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 같다. 새로 찾은 자유의 맛을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골프를 시작하고 20년이 지나도록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이, 실제로 해 보니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 맛도 알게 되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KTX가 내 앞에 새롭게 내놓은 그것,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향유했어야 할,
새로 찾은 자유, 휴식, 우정이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이렇게 자유의 너비를 한 뼘씩 늘려가는 것인가 보다.
그래, 습관처럼 익숙한 것들과 숨바꼭질을 계속해야겠다. 혹시 아는가? 그 뒤에 내 소중한 자유들이 숨어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