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쓴 '편지' 한 장

묵은 속내를 이제 전한다

by 투빈대디



며칠 전 옛 친구의 생일이었다. 그날 나는 그에게 생전 처음 편지 한 장을 썼다. 나는 그 편지 한 장으로 친구에게 진심 어린 생일 축하를 전할 수 있었고, 내 안 깊은 곳에 있던 그 친구에 대한 묵은 미안함까지 덜어 낼 수 있었다.


세월 탓일까?

요즘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 얼굴이 두꺼워진 게 틀림이 없다. 마음엔 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표현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도 이젠 술술 별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무엇이 중한지 이젠 알게 돼서?



아무튼 요즘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한다,

편지 쓰기를 통해서.

예전처럼 편지지에 펜으로 쓰는 건 아니지만, 카톡으로, 문자로, 밴드의 글로 편지를 쓴다. 마음이 생기면 생각을 정리한 다음 손가락을 움직인다. 봉투도 우체국도 필요 없다. 그저 마음을 글로 옮기면 된다.


내가 편지를 쓰는 대상은 주로 얼굴을 본지 오래된 친구들인데,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친구라면 누구든 상관이 없다. 비록 내가 기억하는 생일은 몇 개가 되지 않지만, 카톡이나 밴드 같은 곳에서 생일이 된 친구를 친절하게 알려주니 일부러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부터인가 폰 화면에 뜬 친구의 생일 알림을 보면 그에게 축하를 해 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문자 몇 자로 된 축하인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영혼 없는 축하행렬에 줄을 서는 것 같아서였다.


무언가 특별한 축하를 전하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난 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한 두줄의 문자가 아닌 제대로 된 편지를 쓰는 거다. 그 속에 나의 진심을 담고, 그와 내가 함께했던 추억을 담는 거다. 그게 내 생각의 요지였다. 물론 내가 그런 편지를 받아본 적은 없다. 아마 내가 편지를 써서 보내려 하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 진짜 마음을 담은 선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내자."


그것이 내가 편지 쓰기를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편지 쓰기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새롭게 알려주었다.


편지 쓰기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편지를 받을 사람을 떠올리게 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어떤 사람인지, 그와 연결되었던 인연과 사건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가 내게 했던 행동과 말은 어떤 뜻을 전하려 한 것인지 등을 오늘의 내 시각으로 다시 해석하게 된다.

편지 한 장을 쓰고 나면 상대를 더 깊이 있게 알게 된다.


편지를 쓰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나의 진심을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된다. 내가 그에게 느끼는 마음은 어떤 모양인지,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마음은 얼마의 크기를 가진고 있는지 등을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된다.

편지 쓰기가 내가 놓쳤던 내 속마음을 알려 준다.


편지를 쓰고 나면, 상대방에게 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전부든 일부든 갚았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편지 한 장으로 천냥 빚처럼 무거웠던 마음의 부채를 덜어 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뜻깊은 선물을 그에게 했다는 마음의 채권도 갖게 된다.

편지를 보내고 나면 그 친구를 더 여유 있게 대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편지 쓰기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정확히 알게 되며, 찜찜하던 마음의 부채까지도 허공에 날려 보내고 나면, 그와의 관계는 더 진지하고 더 넉넉하며 더 편안한 그것으로 진화한다.

편지는 둘 간의 관계를 새롭게 다시 시작하게 한다.


이렇게 편지는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


편지를 받은 이의 반응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편지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답장을 하고, 어떤 이는 편지를 받고 나서 직접 전화를 걸어 목소리로 답장을 하기도 하며, 또 다른 이는 선물을 보내겠다며 주소를 물어오기도 한다. 그들이 보내온 답장의 모양은 다 다르지만, 답장 속의 의미는 '고마움'이나 '가까움'을 담은 '행복한 감정'을 전하는 것이다.


삶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표가 나게 표현하고, 표가 나게 반응하는 것'에서 차차 멀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밖으로 표시가 나게 속내를 표현한 편지를 받아 든 이의 반응은 늘 뜨겁다.


내가 이 '편지 쓰기'를 시작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진심이 담긴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에게는 편지만큼 내 속내를 털어놓기 좋은 공간도 없는 것 같다. 나는 내게 가장 편하게 생각되는 편지라는 공간을 통해 가슴속 마음을 전달한 것이다. 편지 쓰기는 마음 전달의 가장 편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이야 말로 가장 이른 때'라는 말처럼 마음을 전하고 싶은 친구가 떠오른 그때 바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허해진 마음의 창고를 채우고 싶었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고마움과 같은 속 마음은 내가 누군가에게 주면 줄수록 오히려 마음의 창고가 채워진다는 걸 알게 된다. 아마도 나는 내 속마음을 친구에게 주면 내가 더 큰 마음 부자가 된다는 걸 알았나 보다.


옛 친구와의 새로운 시작을 기대했을까?

편지는 고목처럼 굳어있던 좋은 이와의 소중한 인연에 새살이 돋게 해 준다. 편지를 쓰고 나면 그와의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나 보다.



고마웠지만 그 마음을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에게 내 속내를 담은 편지를 전하고 나면, 내 가슴 온도가 올라간다. 미소가 얼굴을 메운다. 편지 쓰기는 내게 또 하나의 행복 만들기이다. 요즘 말로 나만의 소확행인 셈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면,

고목이 되어있던 누군가와의 관계에
새 움이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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