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즐겨하는 일’을 취미라고 한다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는 길을 발로 직접 밟으며
걷는 것이 내 취미가 맞다.
걷기가 취미인 나는, 쭉쭉 뻗은 아스팔트 길보다는 울퉁불퉁한 흙길을 걷는 것이 좋다. 직선들로 정돈된 계단길보다는 비탈진 언덕길을 걷는 것이 좋다. 여럿이서 떠들며 가는 길보다는 혼자서 걷는 길이 좋다.
내가 걷기를 시작한 것은 한 십 년 전쯤부터인 것 같다. 집 뒤편에 있는 산을 먼동이 트려 할 때 걸어 오른 것이 그 시작이었다. 굴곡 있는 새벽 산길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발끝에 촉각을 바짝 세우고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어느 결에 온몸은 땀으로 젖어들고, 복잡하게 얽혀 있던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진다.
그리고 그때부터 열심히 대화하고 있는 나와 나를 본다.
걷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나는 그 많은 질문에 즉각 즉각 친절하게도 대답을 한다. 대화는 갈수록 깊이를 더해가고, 그 대답은 점점 더 명료해져 간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문제도 이 대화의 과정을 지나고 나면 결론이나 정의를 만들어 낸다.
땀을 통해, 몸속을 꽉 막고 있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고, 깊숙이 들이쉬는 들숨을 통해 온몸에 청량한 정신이 퍼지도록 한다.
새벽길 걷기는 언제나 내게 이러했다.
뒷산에서 시작한 나의 걷기는 인근의 다른 산으로 그라운드를 옮기기도 하고, 가끔은 먼 곳의 유명하다는 산을 찾기도 하였다.
그리다 언제부터인가 산을 타던 걷기와 함께, 산아래 구릉 길과 동네 골목길로 이어진 길, 둘레길을 걷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산길을 걸으면,
내면의 대화에 충실하게 된다. 깊이 있게 나를 탐색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나의 문제에 집중하여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을 한다. 그렇게 해서 내 속에 곪아 있던 것들을 깨끗하게 몸 밖으로 밀어내 준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지나가는 다른 이와 또 다른 이가 살고 있는 삶을 만난다. 차창으로 스쳐만 갔던 마을의 속살을 나의 발과 코로 느낀다. 아담한 담장, 조그마한 마당, 예쁜 지붕, 나지막한 담들로 만들어진 골목길, 사연 담은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지나가는 얼굴들, 유치원 놀이터에서 시끌벅적 떠들고 있는 아이들을 만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그들의 삶과 섞이게 되고, 자연스레 나의 문제를 다른 이의 그것과 비교하며 해답을 찾아가게 된다.
걷기는 그곳이 산길이든 둘레길이든 걷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선물한다. 대화로 만드는 내면의 평화뿐만이 아니다. 그 옛날 사람들처럼 건강한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 메말랐던 감성에 촉촉한 윤기를 가져다준다. 나만이 아니라 주변을 보는 여유를 가져다준다. 거칠었던 나의 생각에선 각진 모서리들이 사라진다.
내가 걷기를 시작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걷기를 시작하던 그 시기, 사업에 어려움이 몰려오던 어려운 시기였다. 생각하고 고민할수록 걱정과 불안만 더 커졌다. 이대로 가면 사업도 마음과 몸도 모두 망가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우선은 몸과 마음은 지켜야겠다는 것이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나를 지탱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산길을 걸었다.
이렇게 시작한 걷기는 놀라운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몸무게는 줄어들었고, 뱃살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다리는 건강한 근육으로 감싸 졌다. 뿐만 아니라 그 복잡하게 얽혀있던 고민들은 하나씩 하나씩 내 몸 밖으로 배출되었다.
나는 다시 행복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이후 난 걷기를 놓치지 않았다. 걷기는 늘 나와 같이 하였다. 지금도 걷기는 내 인생의 상담자이며, 내 마음을 일으켜 세워주는 심리치료사이다.
고민을 만나면,
기분이 울적해지면,
난 그냥 걷는다.
그러면 된다.
그래서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다른 이에게도 가끔씩은 실내 피트니스 클럽을 나와서 건물 밖 활짝 열린 길을 걸어 보길 권한다. 고민이 있거든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와, 혼자 걷기를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 번쯤 그냥 길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 그 길에서 어떤 대화와 만나는지 체험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