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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Feb 02. 2019

남의 딸 결혼식에서 아빠가 눈물 훔친 이유

딸의 결혼에 대한 아빠의 자문자답

출처: pixabay


친구들의 아들 딸 결혼식에 참석하는 경우가 요즘 들어 부쩍 많아졌다.

우리 딸도 머지않아 결혼할 시기가 되었다는 시그널일 것이다.


수없이 많이 본 결혼식들인데,

요즘엔 그 결혼식이 내게 좀 다르게 다가온다.

결혼식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진다.

심지어 눈가를 남몰래 살짝 훔치기도 한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자녀 결혼식인데 그렇다.


내 눈엔 온통 신부와 신부의 아버지만 들어온다.

신랑 쪽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가 신랑 측과 인연이 있어 그곳에 갔더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의 눈을 잡아 끄는 것은 신부인 딸과 그의 아버지이다.


내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는 순간은 늘 정해져 있다.

아빠가 신부인 딸의 손을 신랑에게 넘겨줄 때,

아빠가 감사 인사하는 신부를 꼭 안아 줄 때,

신부가 울먹이며 눈물을 지을 때,

신부의 아빠가 마이크를 잡고 딸과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를 할 때 등이다.


모든 신부가 나의 딸로 보인다.

모든 신부의 아버지가 나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 내 딸도 아닌 남의 딸의 결혼식장에서 눈물이 날까?


딸의 결혼을 생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딸이 어릴 적 세발자전거에 줄달고 끌어주던 그림이 지나간다. 

앙증맞은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딸내미 안고 바다 물로 들어가던 그림이 지나간다.

예쁜 교복을 입은 딸이 학교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그림이 지나간다.

늘씬한 코트에 기다란 부츠를 신은 멋쟁이 딸과 팔짱 끼고 걷던 그림이 지나간다.


남의 딸 결혼식에서 혼례의 몇 장면을 보면서,

잠깐 동안에 딸과 함께 했던 세월을 담은 파노라마가 영화가 되어 내 눈앞에 펼쳐진다.

내게는 더없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아빠인 내게 딸의 결혼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아직 딸을 한 번도 결혼시켜보지 않은 내게 스스로 물어본다. 

만약 딸이 결혼한다면 어떨 것 같아?



내 가슴이 허전해질까 봐 벌써 슬퍼하는가?

늘 품 안에 두고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보물이 내 품에서 사라진다.

아빠에게 딸은 늘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 주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딸이 아무리 성장했고 당차고 똘똘하다 해도,

아빠에게 딸은 늘 품으로 감 쏴줘야 마음이 놓이는 예쁜 새와 같다.

한 번이라도 더 꼭 안아주어야겠다.


우리 가정에서 딸이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가?

우리 부부와 두 딸로 이루어진 우리 가정에서,

딸은 결혼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떠난다.

우리 가정의 일원에서 벗어난다.

생활공동체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생활공간이 달라지고, 먼저 생각해야 할 사람의 우선순위가 바뀌게 된다.

나는 거기서 생길 딸과의 거리가 싫고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정이라는 둥지를 떠나 새 둥지를 만들어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눈물을 감추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내 귀를 간지럽히던 그 예쁜 조잘거림은 무엇으로 대신할까?

집에 들어서면 쭈르르 달려와 ‘아빠’로 시작하는 조잘거림을 주던 그 딸내미가 없어진다.

나의 귀가 허전하고, 

내 눈가의 미소가 허전하고, 

우리 집 거실이 허전할 것 같다.

이제 그 즐겁던 소소한 낙도 함께 보내줘야 한다.

새로운 둥지로 조잘거림의 장소를 바꾸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아직은 남아있을 둘째가 두배로 조잘거려 줄거라 위안해 본다.

둘째마저 가고 나면 조잘거림을 감상하는 행복은 추억으로 남길 수밖에.

즐길 수 있는 지금 딸의 조잘거림을 더 많이 즐겨야겠다.


제자리 잡았던 그 기둥이 남겨놓은 빈자리는 무엇으로 매울까?

어느덧 다 커서 우리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던 딸이다.

크고 작은 가정사에 비중 큰 역할을 맡았던 딸이다.

생활공동체에서 벗어난 딸은 앞으로 그 역할에 제한을 받을 것이다.

비어 질 그 기둥자리를 무엇으로든 채워 넣으려 애 좀 써야 할 것 같다.

그 빈자리를 딸이 눈치채지 못하게 감쪽같이 메워 놓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딸이 어느 때고 편하게 예전처럼 집에 올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딸의 편으로 편파적이던 아빠의 울타리를 걷어내야 하겠지?

아빠 배를 놀이터로 삼았고,

세발자전거로 동네 일주를 같이 하였고,

두 발 자전거를 혼자서 타는 법을 알게 하였고,

학교 가는 길에 아빠 차를 같이 탔고,

세상에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대답해 주었고,

딸의 출근길에 태워다 주며 이런저런 세상일을 화제 삼아 이야기 나누었던,

그 시공간은 딸바보 아빠의 작은 울타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빠의 울타리는 이제 세월에 익어 낡고 헐거워졌다.

이제 그 묵은 울타리를 한쪽 모퉁이로 치워 주어야겠다.

대신에, 딸이 옆에 있는 튼튼한 그놈과 함께 단단한 새 울타리를 만들게 해주어야 한다.

언젠간 바꾸어 세워야 할 울타리라면 이때 새로 바꾸는 게 맞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우리 딸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한 번이라도 해 보았는가?

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이 늘 나의 자랑거리였다.

세월을 따라 딸과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그것이 늘 행복의 전리품이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 생각해보니,

이제껏, 딸을 품 속에 안아 준 적은 있어도,

나의 입으로 '우리 딸 사랑한다'란 말을 밖으로 내어 본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것도 딸이 성장한 뒤에는 그런 기억을 찾을 수가 없다.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의 가정에 있을 때, 

아직 내 품에 있을 때,

"아빠가 정말 사랑한다"를 입 밖으로 소리 내여 말해야겠다.

더 늦게 전에 기회를 잡아야겠다.


이제 내편이 없는 데, 우리 집 편먹기 내기는 어떻게 하지?

두 딸의 성격이 섞바꿔서, 큰 딸은 아빠를, 작은 딸은 엄마를 닮았다.

그래서 늘 큰 딸은 나의 편이었다.

우리 식구는 나와 큰딸, 아내와 작은딸, 이렇게 편을 먹고 내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내 편이 없을 것이니 편먹고 내기하기는 글렀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늘 고대하던 딸의 저녁뉴스는 이제 들을 수 없는가?

딸이 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회사에 다니고선 그날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

친구를 만난 날이면 친구 소식과 섞어서 들려주던 그 세상의 이야기,

술을 마시면 술과 함께 버물어진 갖가지 젊은이들의 세상 이야기 등등,

딸이 들어오면 언제나 온 식구들은 거실에 모여 앉아, 딸이 가져온 딸의 세상에서 벌어진 저녁뉴스를 들었다.

이제 그 저녁뉴스는 들을 수 없다.

전화로 들어야 할까?

주말 뉴스나 월간 뉴스로 들어야 할까?

매일 듣던 저녁뉴스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내 피부와 패션 관리는 이제 누가 해주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얼굴에 바르는 크림, 손에 바르는 핸드크림, 몸에 바르는 바디로션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멋쟁이 아저씨가 되었다.

딸 덕분이다.

딸이 크고 나서는 늘 아빠의 화장품은 딸의 책임이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은근히 말하던 단골 자랑거리였다.

내 옷 중에 나 혼자 골라 사입은 것은 없다.

언제나 내 옷은 아내가 선택하여 사준 것들이었다.

그런데 딸들이 크고 나니 아내는 딸들의 의견을 받아 나의 옷을 골랐다.

그래서 내 옷은 딸들이 고른 옷들이다.

나름 젊은 패션이라 혼자서 자부한다.

딸이 결혼하고 나면 화장품과 옷은 어떻게 하지?

그것이 문득 걱정이 된다.






그냥 남의 결혼식장에서 누군가의 딸일 신부만 보아도,

난 아빠가 되어 있고, 딸과 만들었던 추억의 파노라마 속에 있다.

그리고 어느새 나의 눈가엔 물이 고인다.


나의 눈에 고인 물은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눈물이 아닌 것 같다.

딸이 비워놓고 간 공간을 만나게 될 아빠인 나를 걱정하는 눈물인 것 같다.

그래서 결혼식장만 가면 뜬금없는 눈물을 짓고 오나 보다.


이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내 딸을 신부로 보낼 때 눈물짓지 않을 훈련을.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래서 눈물 없이 미소 띤 얼굴만으로 딸의 결혼식을 무사히 끝내야겠다.

우리 딸이 웃고 있는 아빠를 보고,
행복한 행진을 시작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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