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아침은 처가에 간다.
우리 집은 부모님 이혼 후
아버지는 어디서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과 명절을 지내고 있을 테며
엄마는 우리 가족과 호텔에서 시간을 보낸 후 조용히 추석 당일을 보내고 있을 터라
갈 곳도 불러주는 곳도 없는 그런 추석이다.
세수만 겨우 하고 아이들과 반팔 반바지 차림에 바로 옆 단지 아파트로 걸어서 삼분 거리인
처갓집을 찾았는데 장모님과 처남 그리고 처남댁이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모님은 그 성격을 종잡기가 힘든 분인데
선택적 연민 유발자이면서 간헐적 막말 드리퍼이신 분이다.
그에 비해 유순한 장인어른은 배우자의 변화무쌍한 성격에 숨죽여 지낸 지 오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래도 욱하는 날이면 우리 집에 와서 딸과 사위 앞에서 장모님 험담으로 삭히지만 약주라도 들어가면 술김에 장모님과 목청을 올리다가
몇 주간 말없이 지내야 하는 냉전으로 끝을 보곤 한다.
그런 장모님은 어떤 불화를 계기로 형제 중 셋째인 장인어른과 같이 참석하던 큰 집 제사에
불참을 선언했고 이후 장인어른 혼자서 명절마다 형제들과 제사를 지내느라 추석 당일에 찾는
처갓집에는 늘 장인어른만 없었다.
또 장모님은 육 남매 중 첫째인데 동생들과 어떤 불화가 있었는지 오륙 년 전부터 여자인데도
내가 부모님 제사를 모시지 않으면 조상이 굶게 된다며 명절마다 제사상을 준비하고 있다.
장인어른은 큰 형 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시고
장모님은 그 아들 내외와 함께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게 처갓집의 명절 모습이다
유교사상과 남녀평등이 어우러진 모습이랄까
거기에 하드코어 캐주얼 복장의 사위네 가족까지
일곱 명이 모였는데 각자 성씨가 다른 사람들 이지만 북적거리긴 해서 명절 분위기이긴 하다.
처음에는 거부감도 많았다.
내가 내 조상 제사도 지내지 않는데 밥 먹으러 와서 처외가 제사까지 지내야 하나 하냐며
집사람과 언성을 높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왜 그랬는지 차례상 앞에 서서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아무 말 없이 제사를 모셨다.
그도 그런 게 집사람도 우리 부모님 이혼 전까지 우리 큰집에 가서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절을 하고 먹고 난 음식을 치우고 그 그릇을 설거지 해온 게
십수 년일 텐데 나야 뭐 절하고 추모하고 그리고 밥 먹는 게 무슨 일이겠냐 하는 그런 생각에서였다.
삼대까지 제사를 올린다고 해서 절을 여섯 번 하며 속으로
"잘못했습니다." "많은 죄 용서해주십시오." 하며 되뇌었다.
남들은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기준이 대수겠냐 우리 가정 평안이 더 중요한 거지 하며
추석 날 처외가 제사를 모셨던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