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미 혜나 혜미 새나
아빠에게 내 친구의 이름이란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엄마 아빠 집을 찾았다. 한동안 못 봤던 어릴 때 친구들을 만나려고 이리저리 스케줄을 잡는데, 아빠가 묻는다.
"그래서 새나는 어디 산다고? 일산?"
아빠가 내 친구 이름 틀리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냥 넘어 가려다가 그날따라 괜히 아빠를 좀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새나? 새나가 누구야? 새미 말하는 거야? 아님 혜나야?"
내가 피식 웃으며 묻자, 아빠가 당황한다.
"걔.. 걔 있잖아. 공부 잘하던 애."
"둘 다 공부는 잘했는데?"
잠자코 보고 있던 엄마가 옆에서 거든다.
"아니, 몇십 년 된 친구 이름을 아직도 몰라. 아무튼 저렇게 제대로 아는 게 없다니까."
엄마까지 가세해서 뭐라고 하자 아빠는 좀 민망한지 "새민가?" 이러면서 생각하는 척을 한다.
이쯤 해야겠다 싶은 내가 "일산 사는 건 새미! 혜나는 잠실 사는 얘." 정답을 이야기하자 그제야 겸연쩍게 웃으며 말한다.
"아, 새미냐? 새나나 새미나 그게 그거지. 알아듣기만 하면 되지 뭘!"
아빠가 언제부터 내 친구들의 이름을 헷갈려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한테 제대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사실 내 친구 이름뿐만 아니다. 아빠는 20년 넘게 단골로 다니는 식당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 아는 길이라며 네비를 안 켜고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엄마에게 혼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에 반해 정확한 걸 좋아하는 엄마는 뭐든 잊는 법이 없다. 마트를 한 바퀴 돌면서 일단 가격표를 한번 쑥 훑고 나면 머릿속에 입력 완료다. "아까 그 자두 얼마였지?" 집에 돌아와서 물어도 대답이 척척이다.
아빠가 모든 면에 있어서 이랬다면, 아마 우리 집은 진작에 망했겠지. 사소한 건 지독하게 기억 못 하는 아빠지만 큰일은 실수하는 법이 없다. 자식들이 다 큰 지금도 법원이나 은행일은 모두 아빠가 도맡아서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대표로 말하는 것도 서슴없다. 가끔 도움이나 조언을 구하면 어른다운(?) 깊은 지혜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난 아빠가 이렇게 내 친구들 이름을 헷갈려하다가 겸연쩍어할 때가 좀 귀엽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에게도 좀 이상한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장 보러 간다며 장바구니를 챙기며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코스트 가려는데 뭐 살 거 없어?"
"코스트코?"
"응, 코스트."
부부는 닮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 엄빠는 아닌데?"라고 항상 생각했다. 겉모습부터 성격까지 뭐 하나 닮은 구석이 없으니(아빠키 180 이상, 엄마키 150 이하 / 아빠는 박소담과 엄마는 장동건과다).
40년 지나고 이제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