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70살, 나이를 거꾸로 먹는 나이
아빠에게 은혜를 갚을 길이 생겼다
어려서는 탕수육이며 짜장면이며 치킨이며 주로 엄마표를 먹고 자랐다(그때는 이게 축복인지 몰랐지. 아이를 낳고 보니 집밥을 먹인다는 게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 운이 좋게도 요리 솜씨가 좋은 엄마를 두어 평소에는 별 불만 없이 지냈지만, 가끔씩 밖에 음식이 너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한창 성장기인 삼 남매는 특히 치킨 광고가 나올 때마다 TV앞에서 침을 뚝뚝 흘리곤 했다.
"페리카나 치킨이 찾아왔어요. 정말 맛있는 치킨이 찾아왔어요. 페리페리 페리카나!"
엄마에게 치킨을 사달라고 조르면 열의 아홉, 엄마는 직접 만들어 주겠다며 시장으로 향하곤 했다. 물론 엄마표 치킨도 맛있게 먹었지만, 뭔가 헛헛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면 몇 날 며칠이고 치킨을 쟁취하기 위한 농성이 이어지곤 했다(여담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은 CM송은 어느 시대에 존재했던 것 같다. 80년 대생들이 '페리카나 치킨'을 동요처럼 부르고 다녔다면 다음세대는 산와머니, 요즘은 헬리하이가 바통을 이어받은 듯).
가끔은 우리가 조르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치킨집에 전화를 걸 때도 있었다. "여기 페리카나 두 마리요." 주로 엄마가 기분이 좋을 때였다. 예를 들면 엄마가 운전면허 주행 시험에 9번 낙방하고 10번째 가까스로 합격증을 땄던 날 같이.
당시 페리카나 한 마리 가격은 6-7천 원 정도였다. 그때는 지금보다 닭의 크기가 커서(체감상) 그런지 두 마리면 다섯 식구가 넉넉하게는 아니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식탐 많은 삼 남매지만 퍽퍽 살은 그다지 반기지 않았기에 우리는 항상 닭다리 쟁탈전을 벌였다. 다섯 명이 한 개씩 돌아가면서 먹으려면 치킨 두 마리를 시켜도 닭다리 한 개가 모자랐다. 그럴 때면 아빠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당신은 치킨을 안 좋아한다면서. 엄마는 가끔 한두 조각 맛을 볼 때도 있었지만 아빠는 단호했다. 맛도 없는 걸 뭐 하러 먹냐면서 너네 다 먹으라며 야구 중계에 시선을 돌리고 했다.
그런 아빠가 치킨을 즐기게 된 건 우리가 다 결혼을 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게 되면 서다. 아빠는 나이가 드니 입맛이 변한 거라고 하지만, 예전부터 조미료 팍팍 들어간 밖의 음식을 좋아했던 아빠가 유독 치킨을 싫어했다는 것에서 합리적 의심이 든다. '페리카나'는 어쩌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의 우리 집 버전이었던 걸까.
하지만 어느 정도 입맛이 변한 것도 사실인 듯하다. 평생 아빠가 떡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 아빠가 떡을 들고 있는 걸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설날에 떡만둣국을 끓여도 아빠는 너무나 확고한 만두 파라, 떡은 다 골라내고 먹는데 말이다. 떡 같은 건 만둣국에서 국물을 흐리는 아주 불순한 재료일 뿐이라던 아빠가 떡을 먹다니. 그것도 스스로 찾아서.
나이가 드시면서 바뀐 것이 또 있는데,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미운 70살? 항상 '뭐 필요한 거 없어?' 물어보면 '됐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아빠였는데, 몇백만 원짜리 안마의자를 사달라고 하질 않나. 본인의 칠순 때 보다 엄마 칠순 때 이것저것 이벤트를 많이 했다고 토라지질 않나. 아니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뭘 잘못 먹었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소하게 해 달라는 건 또 어찌나 많은지, 카톡에서 아무개 친구가 이런 걸 쓰던데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줘라. 집에서 고속터미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아봐라 등등.
문득 딸이 대학 때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샤넬백을 사달라고 했다던 친구 엄마가 떠올랐다. 아니, 세상에 이런 부모가 있단 말인가. 이런 이야기는 TV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세상 모든 부모가 우리 엄마 아빠와 같은 줄 알고 살았던 내게 친구의 이야기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에 비하면 아빠가 요구하는 것들은 애교 수준이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나오니 고마워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아빠가 40년 넘게 나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을 어떻게 갚나 싶어 마음이 무겁기도 했는데 이참에 잘됐다. 앞으로 두고 봐라, 내가 배로 갚아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