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생선을 먹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어려서부터 십수 년을 봐왔는데도 볼 때마다 새롭다.
일단은 젓가락을 이용할 때다. 박대며, 조기며 할 것 없이 가로 세로 젓가락질 몇 번이면 살만 발라진 생선이 내 앞에 놓인다. 어렸을 때부터 마누라와 자식들 생선은 다 아빠가 발라주었다. 지금은 손자 손녀들까지.
진짜 신기한 건 지금부터다. 아빠는 절대 젓가락으로 바른 생선을 당신 입에 넣을 때가 없다(물론 우리가 먹다 남긴 건 예외다. 먹다가 배부르거나 맛이 없으면 '아빠 먹어' 하고 토스하는 건 국룰 아닌가). 아빠는 생선을 통째로 먹는다. 혹은 머리만 떼어내고. 작은 조기 같은 건 한 마리가 순식간에 입속으로 후루룩 빨려 들어간다. 잠시 뒤 우물우물 몇 번이면 입에선 발라진 가시가 우수수수 떨어진다. 진정 세상에 이런 일이 제보감이다.
아빠가 생선을 잘 바르는 건 많이 먹어봐서다. 어려서부터 훈련이 된 결과다. 아빠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우리 할아버지는 선장이셨다. 할아버지는 그날그날 배에서 잡은 생선 중에서 가장 좋은 것만 따로 챙겨 자식들에게 먹이셨다고 한다. 보통이라면 상품성이 없거나 남는 것을 집으로 가져오기 마련인데 말이다.
아빠의 자식 사랑은 모두 할아버지 피에서 나왔다. 퍼주기 좋아하는 것도. 가끔 아빠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들어보면 할머니 속을 꾀나 썩이셨다. 누구 집에 쌀이 떨어졌다는 말에 쌀독을 통째로 가져다가 주는 것은 물론, 끼고 있던 결혼반지까지 어려운 집에 내어 줄 정도로 정이 많았다고 했다. 그 시절 할아버지는 땅도 많이 샀는데, 돈만 주고 문서를 넘겨받지 않았단다. 그러다 한국 전쟁이 났으니 돌려받을 길이 영 막혀버렸다. 증거도 없는 데 어느 바보가 내 땅 가져가시오 할까(네, 조상땅 찾아주기 서비스 진작에 해봤고요).
남편이 물러 터지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악바리가 된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8남매를 훌륭하게 키운다.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시면서. 나중에 지역에서 큰 부자가 된 고모 덕분에 "장한 어머니상" 비슷한 것도 받으셨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할머니가 많이 참고 살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두 분이 젊었을 때 사진을 보았다. 그리곤 할머니가 살아생전 할아버지 원망 한번 안 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진 속 우리 할아버지는 장동건 저리 가라 미남인 거다. 부리부리한 눈에 오뚝한 코, 달걀형 얼굴을 가진 바다 사나이. 왜 남편이 잘생기면 싸우다가도 웃음이 나오고 화가 풀린다는 말도 있지 않나(난, 이번 생엔 경험해 보긴 글렀다). 반면 우리 할머니는...
지금은 두 분 다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 집에서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시절 어르신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할머니 할아버지도 중매로 결혼을 하셨다. 심지어 할머니는 할아버지 얼굴을 신혼 첫날밤에 처음 봤다고 했다.
"진짜? 할아버지도 그럼 할머니 얼굴 그날 처음 본거야?"
"그렇지."
"헐. 할아버지 진짜 실망했겠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이날 할머니는 사랑스러운 막둥이 손녀딸에게 표정으로 욕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욕먹어도 싸다. 할머니 미안.
안타깝게도 할머니의 그런(?) 유전자는 무척 세기까지 했다. 덕분에 아빠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은 죄다 할머니를 닮았다. 그중에서도 아빠는 할머니의 판박이고, 나는 그런 아빠를 빼다 박았다(아, 갑자기 눈에서 물이 또르르... 딸이 아빠 닮으면 잘 산다고 하지 않던가... 100세 시대니까... 설마 100세에 딱 잘살게 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