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자리
아빠에게는 더 이상 아픈 곳이 아니지만
아빠의 왼쪽 손엔 손톱 하나가 없다.
"아빠, 여기 어쩌다가 다쳤다고 했지?"
자라면서 몇 번을 물었을까? 아빠의 빠진 손톱 자리는 볼 때마다 생경하다. 이리저리 만져보며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된 건지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때마다 아빠는 "어렸을 때 다친 거야." 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슥슥 손톱 자리를 털어냈다. 그러면 나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넘어갔다.
언젠가 큰 오빠의 둘째 조카 민준이(9살쯤 되었을까)가 아빠의 빠진 손톱자리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가족끼리 모처럼 지방으로 나들이를 나갔던 때였다. 우리는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다.
민준이가 그날 처음으로 아빠의 빠진 손톱자리를 본 건지, 아니면 나처럼 볼 때마다 새로워서 다시 물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보다는 조금 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할아버지 괜찮아? 지금도 아파?" 손톱자리를 꼼지락 거리며 물었다. 첫째 조카 은준이는 그런 민준이 옆에서 할아버지의 손톱자리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민준이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사이로 은준이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내 손톱 빼서 할아버지 줄게.”
아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특유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몸짓이나 표정도 없이 가만히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재잘재잘 까불기 좋아하는 둘째 조카 민준이도 웬일인지 입을 꾹 다물었다. 더운 여름날 햇살이 내리 쐬는 벤치에 매미소리만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아빠의 자식 사랑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이지만, 은준이를 향한 아빠의 사랑은 남달랐다. 5살까지 엄마 아빠라는 말도 제대로 못 했던 첫 손자 은준이는 마음이 약해서 툭하면 눈물을 쏟아내는 느린 아이였다. 그런 여린 손자를 아빠는 한 번도 부족하다 생각하지 않고 항상 더 큰 사랑으로 품었다.
아빠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항상 주기만 했던 사랑을 처음으로 돌려받은 할아버지의 마음을 어찌 가늠하겠냐마는, 그 순간 아빠의 주름진 얼굴에는 감동받았다는 표현으로는 분명히 충분치 않는 표정이 있었다. 30여 년을 넘게 같이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
다만 지금 와서 그때를 떠올릴 때, 아빠의 눈가가 순간 반짝였다고 기억하는 건, 아빠에게 지금껏 그런 사랑으로 보답한 적 없는 다 큰 딸의 후회가 투영되었기 때문일 테다. 사랑받은 자는 사랑을 갚을 줄 안다. 물론 몇몇 철이 덜 든 자식들은 많이 기다려줘야 한다. 마아... 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