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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최 Aug 07. 2023

집으로

아빠에게 엄마에게 가는 길

부모님은 울산에서 7년을 살았다. 아빠가 직장을 옮기면서 내려갔다가 은퇴하면서 원래 살던 곳으로 올라왔다.


 나는 20년 가까이 엄마 아빠 그늘에서 호위호식하며 살다가 졸지에 날벼락을 맞았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다 큰 오빠 둘과 함께 회사 근처에 집을 얻어 나왔으니, 이게 날벼락이 아니고 무엇인가(삼 남매의 한집살이... 할말하않).


엄마 아빠가 우리 삼 남매를 두고 울산으로 내려가던 그날 밤이 또렷이 생각난다. 엄마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없는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이다 잠이 들었다.


그 이후 7년 동안 명절에 오빠들은 바쁘다는 핑계로(혹은 정말 바빠서) 울산에 도통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셋이 같이 손을 잡고(정말 잡지는 않음), 집에 내려간 게 손을 꼽을 정도다. 반면, 아직 엄마품이 한창 그리울 나이인(?) 20대 막내딸은 명절은 물론이고 휴일이 되면 부리나케 KTX표를 끊기 바빴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엔 항상 1등짜리 로또 복권을 바꾸러 농협 본점으로 향하는 사람처럼 기분이 들떴다. 짐보따리를 짊어지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기차역까지 가는 길이 수고스러울 만도 한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며칠 동안 손가락 까딱 안 하고 누워있을 생각 하니 기뻐서만은 아니... 아니다. 그땐 엄마 아빠 집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세상살이가 고난할 때면 언제나 엄마 아빠가 계시는 집이 고팠다.


엄마 아빠가 계시는 곳으로 향하며 처음으로 집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단순히 아파트냐 단독주택이냐,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 하는 문제가 아닌. 그 시절 엄마 아빠가 있는 그 집은 나의 유일한 '집'이었다. 마음이 쉴 곳이었다.


일기장을 뒤지다가, 그 무렵 울산에 내려가며 쓴 글을 발견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지어지고, 신. 난. 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

버스 타고 서울역까지 가는 덜컹거림이 좋다.

KTX안에서의 고요함도 좋다.


울산역 앞,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시선과 딱 마주쳤을 때 아빠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떠올라 좋다.


문 앞에 나와 "00야"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드는 엄마가 서 있는 풍경이 그려져 좋다.


부엌에서 복닥복닥 음식 만드는 소리도,

창문 너머 들리는 산새소리도,

삐그덕 문 여는 소리도


좋다.

엄마 아빠가 계시는 집,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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