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최 Oct 07. 2023

마중

아빠에게는 기쁨, 엄마에게는 고생?

대학 졸업 후 몇 년 간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다. 처음엔 회사 앞 5분 거리에 살았는데 부모님이 수도권으로 오시면서 자취생활을 접고 부모님 댁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2년 가까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다. 길바닥에 왕복 3시간 30분을 버리면서 매일 새벽 지하철에서 헤드뱅잉을 하는 삶. 그래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나왔을 때 "이건 내 이야기잖아"라며 들썩거렸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경기도민 출근러들의 심금을 울렸으리라(추앙합니다).


마감 때면 어김없이 새벽에 퇴근하는 편집노동자. 누구 하나 죽어야 마른걸레 쥐어짜는 이 그지 같은 시스템이 바뀌려나 싶었지만, 누구도 죽지 않았고(적어도 내가 다닐 때 까진), 나는 그 '누구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퇴사했다.


퇴근하는 내 모습을 지켜본,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시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았단다. 그런 내가 걱정됐는지 아빠는 거의 매일 저녁 지하철 역으로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왔다. 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아빠는 항상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길이라느니, 친구 만나고 왔다느니 등등. 아니 70이 다 된 노인들이 10시에 만나 커피를 마신다니요. 8시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거 뻔히 아는데. 눈에 뻔한 거짓말로 딸내미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줄여주려는 아빠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아빠, 아침마다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고 밤늦게 또 데리러 오고... 많이 피곤하지? 괜히 이리로 들어왔나 봐. 미안해."
"아니야. 아빠는 딸내미랑 같이 살아서 너무 좋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것도 또 하나의 기쁨이지."

언젠가 모처럼  퇴근을 감행했던 날(그래봤자 집에 가면 8시), 피곤하지도 위험하지도 않으니  데리러 나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협박(?)을 했다. 지하철 역 앞에 아빠 차가 보이지 않아서 안심했는데  반대편 출구에 아빠가 서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운동할 겸 나왔다면서 내 짐을 받아 들었다.

"진짜, 과잉보호야 과잉보호."

투덜거리며 아빠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걸어가는  갑자기 코끝이 찡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겨우 참고 그 대신 아빠의 팔을 더 꼭 붙잡았다.


그렇게 아빠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문을 열면 거실 소파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던 엄마가 부스스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엄마는 내가 빨리 시집을 가야 이 고생이 끝난다면서 잔소리를 시전 하며 바로 식탁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차려놓았다.


"어휴, 엄마는 처녀 때 빨리 결혼하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학교 갔다 오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도 잔소리를 많이 해서 빨리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너는."


그러면서 내가 결혼을 안 하는(못하는) 이유가 다 당신이 너무 잘해줘서 그렇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아주 못되게 굴어야겠다면서 참외를 깎아 내 입에 넣어주었(아니, 어머니!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달라서야 되겠습니꽈).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항상 생각했던 나는 정말 그런 남자를 만나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렸다. 막내딸이라면 벌벌 떠는 아빠 탓에 어떤 남자를 만나도 충분히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할 것 같았는데. 


아니다, 내가 선본 지 5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엄마의 모진 구박(?) 덕분이다. 암 그렇고 말고.





이전 07화 집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