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좀 엉뚱한 데가 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달리 말하면 빈틈이 많다. 쉽게 말해서 허당이다. 누가 호박에 줄 긋고 수박이라며 판다면 일단 한 명의 고객은 확보다. 우리 아빠. 나는 늘 생각했다. 엄마가 걱정인형을 안고 사는 건 8할이 아빠의 그런 성격 때문이라고. 때론 엄마의 잔소리가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엄마가 아빠에게 잔소리를 퍼부을 때는 주로 뭘 잘못 사 올 때다. 한번은 아빠가 양손에 참외 봉지를 가득 들고 들어온 적이 있다. 길가 트럭에서 5천 원에 샀다며 어찌나 의기양양해하던지. 하지만 이내 엄마의 잔소리가 쏟아진다. 그도 그럴 것이 참외 대부분이 이미 너무 익다 못해 삭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빠는 또 길에서 쓰레기를 사 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뭐든 대충대충 한다며, 사람이 왜 이렇게 꼼꼼하지가 못하냐고 핀잔을 준다. 그럼 아빠는 이게 왜 이러냐고 참외 봉지를 붙잡고 씩씩댄다. 죽어도 잘못했다는 말은 안 한다. 다시는 안 사 온다고 약속을 하지만 30년 넘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아마도 어쩌다 한 번씩은 제대로 된 물건이 걸릴 때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지, 아니면 정말 잊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아빠에겐 이상하리만치 친구가 많다. 집에 있으면 어찌나 불러대는 사람이 많은지. 한시도 집에 가만히 있을 때가 없다. 때문에 가족 모임을 계획할 때마다 아빠의 스케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새언니가 아버님은 사업하는 사람 같다고 했을까. 은퇴하고도 매일같이 약속이 줄줄이다. 그것도 다 밥을 사준다는 사람들만 줄을 섰다.
오지랖은 또 어찌나 넓은지. 누가 중매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 엉덩이가 들썩들썩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한번은 자주 가는 은행 여직원의 연락처를 받아왔다. 사촌 동생 아들의 배필로 딱이라나 뭐라나. 나는 이건 아닌 거 같나고 극구 말렸지만 아빠는 끝내 그 만남을 성사시켰다(결과는 보나 마나 꽝).
언젠가 아빠의 친한 친구 중에 한 분이 개를 잃어버렸다면서 연락을 해왔다. 집 마당에 묶어두고 기르던 개였는데 사라졌다는 것이다. 연락을 받은 아빠는 한달음에 개를 찾겠다고 나섰다. '아니, 주인도 못 찾는 개를 아빠가 어떻게 찾으려고'라고 만류했지만 아빠가 들을 리 없지.
어둑어둑 날이 저물 때까지 아무 소식이 없자, 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일단 한번 집에서 나가면 매번 3.8선을 넘은 사람처럼 연락이 뚝 끊겨버리는 건 왜인지. 혹시 뒷산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다치기라도 한 거 아닐까 싶어 친구분께 연락을 해보려던 찰나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 왜 이렇게 늦었어. 걱정했잖아. 연락도 안 받고."
"뭘 걱정을 해."
"아니, 그래서 개는 찾았어?"
"응, 찾았지."
"어떻게?"
나의 물음에 아빠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응, 나랑 친해."
그 말에 엄마와 나는 뱃가죽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서 자지러졌다. 어떻게 친해졌냐고 물어보려는데 웃음이 터져서 도저히 물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아빠가 그 집 개와 어떻게 친한지. 그래, 사람도 느끼는 걸 동물이 모를 리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