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블랙홀&나의 불안홀

세 개의 구멍이 가르쳐 준 것

by 혜준

오늘 아침에는 세면대에서 콧노래까지 부르더니 딸아이는 씩씩하게 학교를 향한다.

아파트 복도 끝에서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딸을 배웅하고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면

"휴우......"하고 큰 숨을 내쉬게 된다.

안도의 숨인지 스트레스 섞인 한숨인지는 아침에 나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으로 결정된다.


알고리즘 덕분에 휴대폰에는 늘 진학에 성공한 학생과 부모님들의 사연이나 방법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내 길을 가자!!라고 다짐해도 밀물처럼 몰려오는 불안에 눈을 반쯤 감고 선배 어머니들의 글과 영상을 보게 된다. 무시하고 싶지만 불안함과 절실함에 보고 나면 더더욱 쌓이는 불안과 무력감.

그리고 훌륭한 그들에 대한 질투와 선망과 심술.


우리 집에는 벽에 두 개, 화장실 문에 한 개의 구멍이 있다. 도합 세 개의 구멍이다. 모두 딸이 만들어 놓은 블랙홀이다. 얇은 합판 벽을 잘도 골라 힘도 별로 안 들이고 손과 발로 멋지게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유를 몰랐다. 그저 드디어 우리 집에도 그 무서운 사춘기라는 호르몬 이상자가 출현했다고 전전긍긍했다. 처음엔 딸아이도 자기의 과격한 행동에 다소 반성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두 번, 세 번째는 아주 쉬운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구멍을 감추기 위한 벽지의 재질과 색상의 선택, 땜빵 기술은 점점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혼내는 건 엄두도 못 내고 다만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겁부터 났던 것 같다.


구멍이 늘어가면서 딸은 잘 다니던 학원을 안 간다고 하고, 휴대폰 제한을 멋대로 해제하고, 거실에서 하던 공부를 방에서 한다며 컴퓨터를 가지고 들어 가고, 책상 위에는 정리 안 된 낙서 투성이의 프린트가 굴러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딸아이를 생각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왜 저럴까? 정말 호르몬 탓일까?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딸에 대한 나의 큰 기대와 욕심이 원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다 저를 위해서인데....."가 앞섰다. 대학 입시까지 이런 루트로 이런 속도로 가면 괜찮을 거라고 그려 놓았던 내 계획표가 자꾸 어긋나는 게 짜증이 났고, 딸아이가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게을러 보이고 미련해 보였다. 어떻게든 궤도에 올려 보려고 아이에게 온갖 아양을 떨고 있는 나 자신이 비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뻣뻣하게 구는 딸이 괘씸했다. 겉으로는 내가 할 도리는 한다는 책임감에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도 쌌고 저녁엔 아이를 맞이하러 역까지 나갔지만 애정은 없었다. 책임뿐이었다. 아이가 모를 리가 없다는 걸 몰랐다. 난 그런 엄마였다.


이젠 안다. 딸아이가 뚫어 놓은 깊은 블랙홀과 같은 구멍을 보면서 내가 어리석고 차가운 엄마였다는 걸 깨닫는다. 아이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내 기대에 부응하는 성실하고 착한 딸만을 사랑하려고 했다는 걸 안다.

존재 자체로서의 나를 인정해 달라는, 사랑해 달라고 하는 딸의 애절함이 세 개의 블랙홀을 만들었다.

지금도 내가 완전히 내 욕심과 기대를 버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저래서 대학은 갈 수 있으려나, 자립은 할 수 있으려나 하는 내 마음속의 불안홀은 넓고 깊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의 딸의 모습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방황해도 실패해도 요령 없고 덤으로 애교도 없는 우리 딸 그 자체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3년 동안 3개의 블랙홀이 나를 깨우쳤다.


세상 잘 큰 아들딸들은 부모 노력보다 자신들이 훌륭해서 잘 성장한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 불안은 내가 부모로서 뭔가 빠뜨리고 있는 건 아닌가, 뭔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에서 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애써서 해 주고 있는 것에 아이들이 따르지 않으면 당장 큰일이 날 것 같은 착각이 내 불안홀을 크고 넓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없어도, 내가 간섭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의지와 힘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데 약 3년이 걸렸다.


우리 딸의 블랙홀은 앞으로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불안홀은 더 이상 커지지도 넓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아침 딸의 뒷모습이 내 눈에 씩씩하게 보이는 게 바로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