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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Aug 01. 2022

말의 지혜와 후회

쇼펜하우어의 <논쟁술>을 드려다 보다

야외에서 피사체와 그 그림자를 같은 프레임에 넣고 사진을 찍고자 할 때 여러 가지 시선을 염두에 둔다. 내가 원하는 피사체의 그림자 형태를 위해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고, 자리도 살짝 옮겨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피사체가 굽어 있으면 그림자도 굽고, 곧으면 그림자도 바르다.


말도 그런 건 같다. 마음이 피사체라면 말은 그림자다. 마음이 삐딱하면 말도 거칠다. 마음이 옳으면 말도 순한 편이다. 말을 하는 방법은 크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토론식으로 말하는 법’이 있다. ‘이성적’으로 어떤 명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말하는 것을 논리적이라고 한다면, ‘감정적’으로 상대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접근하는 것은 토론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참으로 많은 말을 듣고, 하며 산다. 그런데 요즘 매스컴을 통해 정치인들 혹은 그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은, 거의 흉기(凶器) 수준이다. 그런 것을 미국에서는 ‘트럼프 (우리로 치면 한 때 홍모라는 정치인) 효과 (Effect)’ 라 말한다고 한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혹 그들이 남몰래 <그 책>을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 책이란 독일의 대표적인 염세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쇼펜하우어가 쓴 <논쟁술>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상대와의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비법 38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전부 다 소개하기에는 그렇고... 몇 가지만 실례를 들어 추려본다.


▶24. 거짓 추론과 왜곡을 통해 억지 결론을 끌어내라.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 당시 이인제 후보가 상대인 노무현 후보를 한 방에 보내기 위해 식상한 그러나 가끔은 먹히기도 하는 ‘왜곡된 색깔론’을 또 들고 나온다. 노 후보의 부친도 아닌, ‘장인이 빨갱이’였다고 폭로한 것이었다.


▶28. 상대방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라.


만일 그때 노 후보가 ‘장인은 좌익이 아니다’라는 프레임으로 이 후보와 정치적 공세를 폈다면, 이 후보가 친 덫에 빠져 곤혹을 치렀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딱 한마디로 그 상황을 역전시킨다. ‘(장인이 좌익이었다고 해서)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져야 합니까?’


▶23. 말싸움을 유도하여 상대방을 자극하고 주장을 과장하게 만들어라.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선 TV 토론 장면. 힐러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입이 험한 트럼프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음담패설을 해대자, 품위를 문제 삼아 물고 늘어졌다. 그러자 트럼프는 힐러리 남편의 과거 성 추문을 끄집어냈다.


▶32. 상대방의 주장을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범주 속에 넣어라.


"내가 한 것은 말뿐이었지만 당신 남편 빌 클린턴이 한 것은 행동이다. 훨씬 나쁜 짓을 한 거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인턴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문제 삼아 말한 것이다. 증오의 대상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상대의 약점을 들쳐 내, 역공을 펼친 거다. 물론 힐러리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이 밖에도...


8.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라. /14. 뻔뻔스러운 태도를 취하라. /24. 거짓 추론과 왜곡을 통해 억지 결론을 끌어내라. /36. 의미 없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 내라. /38. 상대가 너무나 우월하면 인신공격과 모독, 무례한 방법을 사용하라. 등등.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 비법이라는 것들이 그리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TV 뉴스 시간에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말들과 너무 닮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분명 그들은 지난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쇼펜하우어의 그 책을 밑줄 그어 가면서 읽고, 그렇게 써먹는 거다, 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질병은 입을 좇아 들어가고 화근은 입을 좇아 나온다.’ 중국 북송 초기 이방이라는 학자가 쓴 <태평어람>에 나오는 말이다. 걸러지지 않은 말을 경계하는 거다. 그러나 이런 거친 말 중에서도 날카로운 분석과 논리 정연함 그리고 허를 찌르는 위트와 유머에 찬 말도 많다.


“나는 내가 옳을 때 화를 내는데, 처칠은 잘못할 때 화를 낸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화를 낼 때가 많다.”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드골이 한 말이다. 영국 수상 처칠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상스런 표현 한 마디 없이, 상대를 낮추고 자신을 높이는, 촌철살인의 백미다. 우리도 이렇게 품위 있게 말할 수 없을까.


잘된 것은 내 탓이고 잘못된 것은 남 탓을 해대는 요즘 같은 이기적인 시대에 금과옥조 같은 말도 있다. “나는 남 탓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책임은 나에게 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말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지갑 속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 봐야 할 명언이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에 들어간다. 말은 꽃이 되기도 하지만, 칼이 되기도 한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나이가 물들어가면서 지혜는 차치하더라도, 후회할 말은 하지 않고 살 일이다.

                             포항 북부에 있는 연인 바위... 입이 참 무거워 보였다. (유화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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