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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n 23. 2022

도반의 존재 이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

'도반'이라는 단어를 개인적으로 좋아해 자주 말하고 쓴다. 사전적 의미로는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으로, 도(道)로서 사귄 친구>라는 뜻이다. 하지만  불교 신자가 아닌 내가, 불도를 수행할 일이 없건만 아주 오래전부터 자주 이 말을 애용해 오고 있다. 지금도 지인 중에 그의 실명 대신 도반이라고, 내가 부르는 이가 있을 정도로.


오래전에 도반이라는 말을, 막 철들기 시작하던  막내아들에게 ‘우리 도반 하자’라고 했다가, 철없는 아빠로 무시(?)를 당한 적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지금도 나는 사진을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기타 이런저런 목적으로 만나고 있는 이들에게도 자주 ‘우리는 도반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술을 마시다가 말고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도 또 도반 타령을 한다. 나는 도반을 이렇게 정의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사진 모임이나 기타 동아리 혹은  술 모임에서 도반을 이야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들에게도 신의 은총으로 우리가 가족으로 만나 아버지와 아들로서도 좋지만, 같은 곳(행복이라고 해두자)을 바라보고자 하는 ‘삶의 동반자’로서 같이 노력하자는 말이었는데... 쩝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이 세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것을 바라보고 그것의 좋은 점을 배운다면, 그건 내 삶의 ‘쾌’다. 하지만 그것의 나쁜 점을 답습한다면 그건 ‘불쾌’다. 나는 불쾌한 삶을 지양한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의지>로, 나는 능동적으로 <쾌있는 삶>를 추구하고자 나름 열심히 노력한다.

                                       < 보문호수... 어느 날 만난 두 마리의 낯선 도반들>


최근 내가 속해있는 (나름대론 아주 중요한) 모임에서 불쾌한 일이 있었다. 속된 말로 '내가 한 일은 로맨스고 남이 한 짓은 스캔들'이라는 논리였다. 처음 그 사건 소식을 듣고 먹먹했다.

“이런 사람과 계속 가야 하나?”


분명 처음에 우리들은 (내 표현대로 하면) 도반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가 나는 그가 권위와 아집과 위선으로, 그 서푼 보다 못한 <힘>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그날 내가 내린 결론은 쿨했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백석의 시를 읊조리면서.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 보다...”


내가 그 모임의 탈퇴 수순을 밟고 있을 때, 그 모임에 같이 있던 사람(도반)이 나의 성급한 행동을 말리며 말했다.

“여기서 그만 두면 그의 불의한 힘에게 지는 거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때가 되면 같이 그만두자. 때는 곧 온다”


나는 지천명을 넘긴 지 오래됐건만 천명을 알기는... 쥐뿔. 본질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시선, 그것이 좋고 나쁘고의 단순한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었다. 이 시선의 방향을 느끼고 진단하는 ‘힘’이야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나에겐 그 황당한 힘을 가진 ‘시선’에 대한 문제의 맥을 짚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 지식은 가난했고 지혜롭지 못했다, 사색과 고뇌로 해결하기보다는, 감정만 앞세운 것이다. 그때 나는, 다시 한번 헤게모니의 끈을 푸는 것은 ‘내’ 몫이 아닌 ‘우리’의 몫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 도반 때문에... 이것이 내 삶에 있어서 도반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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