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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l 02. 2022

기억의 습작

‘기억하고 싶은 것은 또렷하게, 잊고 싶은 것은 흐릿하게’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  꿈을 꾸게 되면 자주 옛날에 살던 곳이나, 자주 갔던 곳에서 어린 혹은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난다. 그리고 깨고 나면 그곳을 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어떻게 변했을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서울 독립문 인근. 그곳은 벌써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내 어린 시절과 연결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고가도로 건설로 독립문이 원래 자리에서 70m 미터 북쪽의 현 위치로 이전했다는, 뉴스 보도를 아주 오래전에 TV에서 확인했다.


광화문 인근은 중고대 시절과 직장 생활을 하던 곳이다. 수년 전에 그때 그 흔적들을 돌아볼 계획으로, 몇 해 전에 1박 2일 서울을 찾은 적이 있다. 해가 진 무교동에서 매운 낙지를 안주 삼아 술 한잔 마시고 그 인근에서 밤을 보냈다. 새벽에 숙소에서 나와서, 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옛 자리에서 이사 간- 청진옥을 찾아 가, 선짓국으로 해장을 했다. 그리고 인적 드문 그 새벽길을 철저히 홀로 걸었다.


동대문 가까이까지 가서는 청계천으로 넘어 을지로 충무로... 천주교 신자들한테는 명례방이라는 동네로 더 유명한 그곳을 거쳐, 남대문 시장을 지나 서울역에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경주로 돌아왔다. 자꾸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또 추억의 한 컷. 서울 신촌 이화여대에서 연세대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신촌역이라는 기차역이 있다. 지금은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주위에 들어서 번화가로 변했지만, 내 젊은 날의 기억엔 호젓한 시골 역 모습으로 남아있다.


거기서 문산이 종착역인 경의선 기차를 탄다. 지금 세대는 상상도 못 할 기차 중에서 가장 느린 비둘기 호다. 이 기차는 역이란 역에 다 멈춰 섰다. 그래서 운임도 제일 쌌다. 좀 오버하는 친구는 자기가, 비둘기 호와 달리기 시합을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고 허풍을 떨곤 했다.


목적지는 백석동과 마두동의 두음을 딴 백마(白馬)다. 수색을 지나고 능곡과 화전을 지나, 한 시간이면 백마 역에 닿는다. 내리면 어설픈 역사가 있기는 하지만 주위는 휑한 들판이다.


그곳에서 조금만 걸으면 ‘화사랑’이라는 술집이 있다. 70년 대 말 홍익대 미술학과 출신의 K라는 젊은 서양화가가, 신촌에서 백마의 폐농가로 아틀리에(화실)를 옮긴다. 그러자 하나 둘 그의 친구들이 놀러 와 술판이 벌어진 것이 화사랑이 생기게 된 배경이다.


화사랑은 ‘그림이 있는 사랑채’라는 뜻이다. 나중에 그림은 사라지고 술만 남았으니, 화사랑을 ‘주사랑’으로 바꿔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던 이도 있었다. 화사랑이 제일 유명했고 ‘고장 난 시계’ ‘썩은 사과’ 등과 같이 기이한 이름의 주점도 있었다. 그리고 카페와 식당 등도 여러 모여 있었지만 그것들 외에는 완전 깡촌이었다.


지금의 홍대 인근과 비교하면 안 된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백마의 화사랑 일대는 모하비 사막 안에 있는 라스베이거스처럼, 황량한 벌판에 터 잡은 젊은이들의 아지트였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그들을 위한 해방구이기도 했다.


백마를 맨 처음 갔을 때 나는 20대였다. 일 때문에 들락거릴 때는 30대였다. 그러고 보니 학생 신분으로, 기자로서, 혹은 데이트할 요량으로 그곳을 찾곤 했는데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지금 백마는 그때 그 백마가 아니라고 한다. 하긴 세월이... 나는 그곳을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 있는 그곳의 추억들을 가슴 저 깊숙이 담아 둘 것이다. 행여 닳을까 봐서다.


그리고 보니 경주에서의 내 삶도 짧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간혹 주말에 카메라를 들고 새벽 거리를 돌아다닐 때면, 경주 이곳저곳 많은 곳에서 새겨진 추억이 가물거린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또렷하게, 잊고 싶은 것은 흐릿하게.’라고. 하지만 희망 사항이다. 도리어 '기억하려고 하면 흐릿해지고, 잊고 싶으면 더 뚜렷해진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나는 종종 내 기억을 습작한다. 어떤 글이나 그림 등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습작해 보는 것처럼. 그러고 나서 도리질을 하거나, 지우기도 하고 어느 땐 찢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그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화상 입은 흉터처럼 돌이켜 볼 때마다 울컥한다. 그 이유를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빛바랜 추억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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