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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l 03. 2022

좋은 게 좋은 걸까?

난 쌈닭이 싫다

영화배우는 아니었지만 내 나이 30대 때  다니던 회사가 충무로에 있었다. 출퇴근이 좀 자유로운 직장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퇴근 시간이 딱 정해져 있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필드에서 현지 퇴근을 하기도 했지만, 매월 마감 때는 밤늦게 혹은 꼬박 새워 일을 마무리해야만 했던 시절이다. 요즘처럼 주 52시간 근무로는 어림도 없는... 그런 업종이었다.


철야 등으로 날이 밝으면 아침을 먹기 위해 인근에 있는 단골 일식 우동 집을 찾곤 했다. 오래된 허름한 간판에 짝퉁 일본인 주방 복장을 한 주인장이 맛나게 우동을 말아내던,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맛 집 중 한곳이었다. 메뉴는 튀김우동 등 서너 가지였고 평수도 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격도 착했다.


내게 우동은 라면과 달리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먹거리 중에 하나였다. 점심때는 손님이 많아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침엔 여유가 있는 편이라 자주 그 집을 찾았다. 한 테이블에 의자 4개가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 벽을 바라보는 혼식이 더 편한 구조였다. 요즘 혼식 전문 식당의 원조 격이라고나 할까.


어느 날. 그날도 따뜻한 우동을 맛있게 반 좀 먹었을 즈음, 음식에 바퀴가 달려 있지 않지만, 그렇게 불리는 벌레가 그릇 안에서 발견되었다. 헐... 주위를 둘러보니 열 명 가까운 사람들이 맛나게 허기를 때우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그날 특식(?)이 뭔지 알았다면 다들 난리가 날 판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망설였다. 그 잘 익은 익사체를 보고 비명을 질러야 하나? 머뭇거리면서 서빙하는 아줌마에게 조용히 먹던 그릇 속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얼른 그릇에 남은 것들을 개수대에 버린 아줌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내게 속삭이듯 말하는 거였다. ‘음식 값은 안 받을 게요’


잉?... 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식당을 나왔다. 음식 값을 안 받겠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에? 그건 아니다. 나는 그때 내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날 내가 그 벌레의 익사 책임을 주방장에게 추궁했다면 아마 그 집은 그날로 문을 닫고 말았을 것이다. 충무로는 그런 곳이다. 뜨내기보다는 인근 직장인이 많았기에 소문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중문을 넘어 대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대 학생 때도 터미널 근처 식당 국밥에서 프랑스 수도와 이름이 같은 곤충과 눈이 마주쳐, 놀라고 당황해 짜증이 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쿨하게 밥값을 계산하면서 음식을 이렇게 만드시면 안 돼지요, 하고 훈수를 팁으로 주고 나온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나의 모질지 못한 싹수는 어릴 때부터 아닌가? 싶다)


40대 땐 집 근처 식당에서 샤부샤부를 먹다가, 탕 안에서 낯선 긴 종이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소고기 원산지를 궁금해하는 손님들을 위해, 육수와 함께 끊여 내온 주인의 과한 배려였다. 나는 그날도 소란 없이 그 자리를 나왔다. 그 뒤로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았고 얼마 후엔 그 식당은 폐업을 했다. 아마 주인이 그런 식으로 계속 과잉친절을 했기 때문인가? 모르겠다.


내 본디 태생이 착한 건지 어리바리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세월이 이 만큼 흐르고 보니 먹거리에서 뿐 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도 그런 유사한 일을 여러 번 당했다. 그때마다 나의 선한 심성 운운하지 않더라도 나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그냥 그런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런데 나이 들어 보니 그런 선택이 꼭 옳은 건만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술자리 모임에서 A라는 사람의 언행이 안하무인이었다. 그가 늘 평소에서 그랬기 때문인지(술을 먹었든 안 먹었든) 몰라도 같이 있던 사람들은 인상만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였다. 그때 참을 수 없던 나는 눈을 부릅뜨고 허리를 곧게 핀 상태에서 정.확.한 표준말로 이렇게...


“왜, 당신의 종교만 옳은가? 왜, 당신의 말과 행동만 바르다고 말하는가? 왜, 상대방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도 인색한가? 그리고 술도 좀 적당히 마셔라. 늘 술만 마시고 나면 사람인지, 개인지 도대체 구별이 되지 않는다.”


...라고 나는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늘, 또, 변함없이, 여전히, 항상, 초지일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남들처럼 눈감고 입 닫고 있었다. 귀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거다, 좋은 거다) 속으로 혼자 이렇게 되 뇌이면서. 그런데 더 최악인 것은 그 자리를 피해, 집으로 갈 차편이 여의치 않다는 거였다. 그곳은 시내와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예약된 술자리였고 10여 명이 차 두 대로 나눠 타고 왔기에, 모임이 끝나지 않는 이상 귀가 방법이 요원했다. 결국 그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밤이 깊어서야 자리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옛날 식당에서도, 그때 술 모임에서도, 그리고 간혹 TV에서 볼상 사나운 정치판을 보면서... 나는 그저 어느 노래 말마따나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만 읊조릴 뿐이었다.

    이 아이처럼 그냥 '바라만 보고 산다.' 경주 황성공원 맥문동이 한참이던 지난여름 어느 날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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