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괴물처럼 생긴 석주, 물이 가득 든 석회단구, 여기저기 치이는 물웅덩이 속 석회산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동굴은 가면 갈수록 춥고 으슬으슬해졌어요.
캐모는 불이 든 램프를 꼭 껴안으면서,
체온을 작은 램프에 의존한 채 석순과 석주 사이를 피해 더더욱 안쪽으로 들어갔죠.
불빛의 빛이 점점 약해질 즈음, 캐모는 무언가의 따뜻함을 느꼈답니다.
램프의 불이 다 꺼져가는데도 오히려 더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에, 온기를 쫓아 앞으로 뛰어갔어요.
어두웠던 동굴 안이 점점 밝아지고, 따뜻하다 느꼈던 기온은 점점 답답해졌어요.
헥헥거리며 뛰던 캐모는 눈앞의 광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답니다.
거대한 아치 그 너머에는 찬란하게 드리워진 동굴커튼이,
땅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커다란 광물질들과 물처럼 흐르는 용암이,
그리고 멀리에는 우뚝 솟은 거대한 신전이 있었어요.
캐모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신전까지 쭉 뻗어있는 앞의 큰길을 걸어갔어요.
지하는 상상했던 것보다 놀라웠어요.
캐모의 키보다 큰 석순에는 빛나는 구멍들이 뚫려있었고, 사이사이에는 용암이 직선으로 곧게 흘러가고 있었지요.
캐모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관찰했어요.
마침내 캐모는 석순의 빛나는 구멍은 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이었고, 수로를 따라 용암이 흐르던 것을 깨달았답니다.
그곳은 작은 소도시였어요.
캐모의 팔뚝만큼 작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고 있는 도시 말이에요.
지하 도시의 사람들은 저마다 예술품을 만들고 있었답니다.
여기저기서 찰 두드리는 소리와 크고 작은 먼지바람이 일었어요.
그 속에서는 칼, 방패, 도끼 같은 각종 무기부터 장신구, 손톱보다도 작고 동굴만큼 큰 조각상들이 태어나고 있었죠.
캐모는 얼굴 조각상을 만들고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어요.
"안녕하세요."
"안녕!"
"혹시 죽음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편지가 왔거든요."
"그래? 이 큰길을 쭉 따라가 보면 죽음이 있어. 저 신전 안에."
캐모는 발랄하게 알려주는 사람의 말을 따라 큰길을 쭉 따라갔어요.
지하도시 깊숙한 곳 신전을 찾아간 캐모는 신전 앞에 서 있던 죽음을 만났죠.
"어서 오렴. 기다리고 있었단다."
"제가 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난 뭐든지 알 수 있지.
네가 언제 태어났고, 어떻게 자랐고, 이때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나,
네가 뭘 물을지도 말이야."
"그럼…."
캐모는 죽음에게 발신인이 없는 편지를 주었어요.
죽음의 손짓 한 번에 편지가 공중으로 떠서 스스로 펼쳐졌답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죽음은 말했어요.
“이제는 뭘 하고 싶니, 아가야?”
"네?"
"이제 편지는 너한테 남은 거밖에 없을 텐데. 굳이 하고 싶은 게 있니?"
캐모는 이때까지 자신이 찾아다닌 소중한 것들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신에게는 더 이상 다리가 되어줄 편지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지요.
"… 잘 모르겠어요. 이때까지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것을 들었지만,
그것들이 모두 없는 저에게는 잘 와닿지 않았어요."
캐모는 고민하다가 말했어요.
"하지만 아직 친구도 못 찾았으니, 친구가 어딨는지 물으면서 더 찾아볼래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친구가 어딨는지 알려주면, 넌 찾아다니는 걸 그만둘 거니?"
"제 친구가 어딨는지 아세요?"
"내가 모르는 건 없어."
죽음이 캐모를 쳐다보며 말했어요.
캐모는 그의 눈이 정말 기이하다 생각하며 답했어요.
"아뇨. 전 그 친구랑 같이 더 찾아보고 싶어요. 그 친구도 제 마음에 든 답은 못 찾은 것 같거든요."
대답을 들은 죽음은 움직이지도 않고 캐모의 초점 없는 눈을 계속 쳐다봤어요.
그러고선 갑작스레 한숨을 쉬었답니다.
"네 친구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단다. 내기에서 져버렸거든.
그리고 이건 나에게 온 편지가 아니다."
"네?"
"이걸 받을 사람이 내가 아니란 뜻이지. 따로 받을 사람이 있어.
하지만 걱정 마렴. 네가 나에게 찾아온 것도 필연이라면 필연이니.
힘들게 걸어온 대가로 넌 나에게 물어볼 권리가 생겼단다.
묻고 싶은 게 있겠지?"
"제가 진짜 물어도 되나요?"
"그럼. 값은 이미 치러졌으니 물어도 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찾으러 여행을 가는데, 당신은 뭐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지 아세요?"
“삶만큼 소중한 것도 없단다.
좋든 싫든 하루를 넘기고, 하고 싶은 걸 바랄 수 있잖니.
이런 곳에서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른 채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는 것보다는
저 넓은 세계에서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말이지.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꿈꿀 수도 없는 채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밖에 못 하니까···.”
죽음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검은 연기가 흘러내려갔어요.
캐모는 그것이 죽음의 눈물처럼 보였답니다.
"지금을 소중히 하렴. 날 바라지 말고."
죽음은 읽었던 편지를 돌려주며 말했어요. 그리고는 한 방향을 가리켰어요.
캐모가 그쪽을 돌아보자 벽이 순식간에 파이면서 작은 굴이 생겼어요.
“네가 정말로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가보렴.
제일 처음의 기억이 있는 그곳. 항상 그리워했던 장소 말이야.
거기에서 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단다. 이 편지는 그 사람한테 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