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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아 Oct 11. 2021

12. 너머


캐모는 도시를 나와 서점 주인이 준 오래된 지도를 따라

여러 풍경이 지나고, 많은 시간이 지났어요.

그러다 사방이 온통 하얀 식물로 가득한 숲 앞까지 도착했지요.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에 비해, 그늘져 어둡게 보이는 흰 식물들이 바람에 따라 춤추는 모습이 기이해 보였답니다.



"잠깐 기다려."


캐모가 한 발짝 들어가려는 순간 위에서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에 멈췄어요.

위를 올려다보니 나뭇가지 위에서 아무런 무늬 없이 새하얗기만 한 새가 캐모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그 꼴로 여기 들어오려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고 믿어."

"누구세요?"

"난 헤르마야. 이 숲의 안내인이지.

여기 사는 아이들이 꽤나 성가실 정도로 경계심이 많거든.

여기 갇히고 싶지 않다면, 일단 거기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어쩐 일이야?"

"이곳에 있다는 문지기에게 가는 길이에요."

"아···."

"어디 있는지 아세요?"

"그럼. 데려다줄 수 있지.

아무거나 대가를 줘. 그럼 이 빨리 가는 길을 알려줄게.

덤으로 가는 길 말동무도."


캐모는 가방에 넣어두었던 동전 한 닢을 헤르마에게 주었어요.


"온몸을 하얗게 만들어. 그래야 아이들이 동족인 줄 알고 장난을 안 쳐."

"온몸을 하얗게요?"

"그래. 색을 칠하든, 흰 천을 덮든."


캐모는 서점 주인에게 받아온 하얀 망토를 머리 끝까지 썼어요.


"이제 출발하자."


헤르마가 포로롱 날아올라 망토를 쓴 캐모의 머리 위에 앉았어요.

둘은 하얀 식물들을 거쳐 앞으로 나아갔어요.


"이 숲은 하얀 아이들을 위한 숲이야. 하얀색이 아닌 사람이 들어오면 이 숲에 영원히 가두지."

"그렇군요."

"잘 가려. 조금만 틈만 보여도 바로 눈치채."

"네."


얼마 안가 헤르마가 다시 조잘조잘거렸어요.


"근데 굳이 그놈은 왜 보러 온 거야? 여기서 너 같은 아이를 보는 건 이때까지 흘린 깃털보다 적어."

"누가 편지를 보냈거든요."


헤르마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어요.


"그런 까탈스러운 자식한테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니."

"왜 그렇게 문지기를 싫어하시는 거죠?"

"저번에 찾아가서 머리 위에서 좀 괴롭혔더니 '너 같은 게 올라갈 머리가 아니야.'라면서 딱밤을 날리지 뭐야?"

"그렇군요."

"그리고는 내 깃털도 하나 뽑아갔다고!"

"여기서 말이 통하는 건 걔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찾아가 주는 거라고! 근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니까?"

"친하네요."

"안 친해."


헤르마가 발을 구르며 화를 냈지만 캐모에게는 별로 아프지 않았어요.

어느덧 좁은 협곡에 도착했어요.


"그놈은 이 협곡의 끝에 있을 거야. 다음에 볼 때 내가 좋아할 만한 걸 한가득 준비하라고 전해."

"문지기한테 같이 가주는 거 아니었어요?"

"난 걔랑 얼굴 볼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야!"


헤르마는 캐모의 머리 위에서 날아 숲으로 돌아갔어요.

캐모는 숲 속으로 사라지는 헤르마를 보고 협곡 속으로 들어갔답니다.

가파른 절벽의 사이를 계속 걸어간 캐모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협곡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어요.

동굴 입구에 도착하자 잠을 자고 있던 문지기가 보였어요.


"문지기님, 편지가 왔어요."

"난 문지기가 아니라···. 케로라는 이름이 있단다."


문지기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어요.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넌 누구니?”

“제 이름은 캐모예요.”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넌 대단한 아이로구나. 잠시만 기다려. 불을 지펴 줄 테니."


케로는 동굴에서 나와 평지에 불을 지폈어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찾아왔지?”


캐모가 발신인이 없는 편지를 전해주며 말했어요.


"친구를 찾으러 여행을 가요.

혹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찾는 여행자를 보셨나요?"

"이쪽으로 온 여행자? 그런 걸 말해줄 수 없단다. 애초에 외우고 다니지도 않고."


“그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찾으러 여행을 가는데, 문지기님은 뭐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지 아세요?”


케로는 편지를 대충 훑어보면서 말했어요.


“평생 여기에서 동굴만 지키는 나에게 그런 게 소용이 있을까?

우리 같은 존재한테 소중한 건 별로 의미 있지 않아.

난 그냥 여길 지키면서, 가끔 찾아오는 떠돌이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소소한 낙이란다.”


케로는 길을 비켜주며 캐모의 손에 편지 두 장을 쥐여줬어요.


“이건 지하도시 신전에 있는 죽음에게. 자 이건 네 것이다. 조만간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네. 아, 그리고."


캐모가 케로를 돌아보면서 말했어요.


"헤르마 씨가 다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전해달랬어요."

"그놈이 좋아하는 거야 뻔하지. 신경 쓰지 마. 어차피 항상 그러는 놈이야. 반짝이는 거 한 알 준비해놓으면 좋다고 헤실헤실 날아올걸."

"잘 아시네요."

"이 주변에 말이 통하는 건 그 녀석밖에 없으니까. 알기 싫어도 알게 되는 거지.

여기 찾아오는 이유가 업무 아니면 심심하기 때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뭐,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야."

"친하신가 봐요."

"뭐…. 신경 거슬리게 하는 게 친한 거라면, 난 걔를 친하다고 할 순 있겠지."


케로가 누우면서 말했어요.


"동굴 안쪽에 뒹굴고 있는 램프가 있을 테니, 불 가지고 슬슬 들어가렴. 난 마저 잘 테니."


캐모는 동굴 안쪽에 있던 램프를 주워 불을 넣은 다음, 동굴 안으로 들어갔어요.


"불만 보고 간다면, 어느샌가 도착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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