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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많은 직원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by 넌들낸들

추석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고객님이 계신다.

퇴근 시간이 임박했을 무렵

조금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진 조용한 여성분이 들어오셨다.

추석 때 딸과 단둘이 여행을 가기 위해 상품을 알아보러 온 손님이었다.

3박 4일 말고는 시간을 낼 수 없고

가성비 좋은 추석 상품은 마감된 것도 있었다.


"고객님 어디로 정해놓고 온 지역은 있으신가요?"


"아니요. 첫 여행인데 3박 4일로 갈 곳 알아보려고요."


3박 4일로 갈 수 있는 여행지는 일본, 중국, 홍콩, 대만이 괜찮았고 4박 5일로 태국에 가는 상품이 있는데 밤에 출발해서 아침에 일찍 한국 도착하는 게 있었다.


큰 리액션도 없고 조용조용하시기만 한 분이라

나 혼자 고객의 취향을 찾아야 했다.

여러 상품을 보여 주려고 해도 뭔가 시큰둥한 표정이어서 난감했다.


[바다 좋아하세요? 산 좋아하세요? 온천은 어떠세요? 어떤 숙소를 원하세요? 혹시 못 드시는 음식은 있으신가요?] 등 상품들을 보여줄 때마다 나의 질문은 끊이질 않았고 고객님은 피곤한 얼굴로 대충대충 넘어갔었다.

그렇다고 다 괜찮으니 아무거나 예약하겠다는 마인드도 아니었다. 나 또한 그건 용납할 수 없고 고객이 만족하는 상품이 나올 때까지 계속 질문과 설명이 이어졌다.


"따님은 몇 살 이세여? 딸과 같이 가는 거면 딸의 취향에도 맞아야 재미있을 텐데요."


"저희 딸 취향을 잘 모르겠어요."


"다들 그러세요. 놀이공원 있는 코스도 있고 역사 탐방 코스도 있고 자연 경치에 푹 빠져 볼 수도 있어요."


"전 놀이공원은 또 싫은데..."


"아이들은 또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디즈니랜드 가고 싶어 할 수도 있어요."


"추석에 사람 많고 복잡할 거 같아요"


"거긴 언제나 복잡하죠."


나와 이래저래 대화를 계속 나누다 보니

"아가씨가 질문이 참 많네요. 퇴근 시간은 몇 시예요?"


"저희는 칼퇴근이란 게 없어요. 괜찮습니다. 첫 여행이고 딸과 단둘이 가는 건데 이왕이면 만족하시면 좋겠다 싶어서요."


"전 잘 모르니까 그냥 상품 몇 가지 프린터 해주실래요? 아이랑 집에서 보고 올게요."


고객님은 많이 귀찮아 보이는 상태였다.


난 대만과 중국, 일본 상품 몇 가지 프린터 해주며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센과 치히로라는 애니메이션 보셨나요? 대만 지우펀이 배경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저녁에 거닐면서 맛난 것도 사 먹고 딸과 대화도 나누기 좋을 거 같아요. 뒷날은 예류 지질 공원에서 멋진 자연 풍경도 보고 올 수 있고요.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니 보고 오시면 좋을 거 같아요."


지금껏 여러 상품을 보여드렸지만 대만 상품에 가장 호의적인 미소를 보였었다. 직접 사진을 넘겨보기도 했다.


고객님은 프린터 해준 여러 상품을 가지고 댁에서 딸과 대화를 나눈 끝에 연락을 주셨다. 난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씨가 추천해 준 상품 딸이 다 좋아했어요. 그중에 대만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네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정말요?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상품 다시 보여드리려고 몇 가지 추려놨는데.."

하며 웃자 고객님은 내가 추천해 준 상품으로 가겠다며 날 믿고 여행 가겠다고 했다.


"그럼 날 밝으면 얼른 증명사진 찍고 여권부터 만들어주세요. 여권이 늦어지면 안 되니까요."


다음날 점심때쯤, 고객님은 딸과 함께 여권 신청 해놓고 왔으며 예약금 입금했다며 연락이 왔다.

딸과 첫 해외여행에 많이 설레어 보였다.




한 달 뒤 여행을 다녀온 고객님은

홈페이지 여행 후기를 남기셨다.

그 글 속에는 나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엄청난 질문으로 고객의 취향에 맞춘 여행지 추천 해주고 또 그 여행에 불편함 없도록 일주일치 일기예보도 알려준 세심함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여행 덕분에 사춘기 딸과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출처: tr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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