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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Oct 20. 2023

할매! 신고 할 거야!!!

마음의 상처가 깊었구나...

추석이 지나고 난 산부인과 시술을 받아야 했다.


자궁내막용종


살아가며 첨 들어보는 질병이었다.


9월 초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 한...


할머니 돌아가시고 속에 우울이 차서 그런가...

추석에 안 하던 요리를 해서 그런가...


내내 속이 안 좋아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그래서 추석이 지나고 한글날을 앞둔 주말에

시술받았다.

산부인과 수술 베드에 누워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무슨 실험용 쥐가 된 기분도 들고

수술 전 의사 선생님께서 설명해 준 대로

최악의 경우로 가게 될 까봐 겁도 나고

휴일 내내 독박 육아인데 통증이 심해 아이가 외로워지면 어쩌나 별의별 걱정을 하다

마취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수술 후 잠에서 깨어보니 침대에 편히 누워 있었고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앞에서 아이와 지겹게 기다리는 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난 다시 기절해 잠이 들었다.

한 시간가량 자고 나니

어렴풋이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에서 노는 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어지러움을 이겨내고

옷 갈아입고 복도에서 엄마와 아이를 만났다.

심지어 엄마 친구까지 와 있었다.


그런데 엄마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니 딸이 날 고소한대."


"엥? 뭔 소리야?"


엄마 친구는 우습다고 미소를 지어보았다.


내 손을 잡은 아이도

"할매 경찰에 신고할 거야. 고소할 거야."

하는 게 아닌가?


최근 유치원에서 경찰 직업 수업 배우고 와서

나쁜 사람 보이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떠들던 아이인지라

나 없는 동안 할매한테 섭섭한 게 있구나 하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야가 지난봄에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이 트라우마가 됐나. 갑자기 그 일을 꺼내며 신고한다 그러네."



지난봄

아이는 집에서 아이 아빠와 신나게 뛰어놀다 신랑 가방 끈에 걸려 발가락 골절이 되었다.

처음엔 발가락 골절이 된지도 모르고 유치원도 보내고 산책도 다니고 했었다.

아이가 절뚝거리며 걷는 게 이상해서 소아과 간 김에 의사 선생님께 말하니 소아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현대백화점 옆에 위치한 춘해병원 소아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을 찾았다.

설마설마했는데 발가락 골절이라 아이 반깁스 했다.

울음 터지기 일보직전

깁스를 처음 해 본 아이는 당황해 걷는 걸 두려워했다.

오전부터 쫄쫄 굶은 터라 현대 백화점 식당가로 아이를 업고 갔었다.

을 다 먹고 나 먼저 계산하고 나와 아이 간식으로

약과와 떡을 구매하고 있는데

아이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듣는 순간 " 내 새끼 소리인데?" 했지만

엄마 아빠가 옆에 있는지라 괜찮다고 생각했다.

곧 아빠도 내가 있는 떡 코너로 왔다.

"자가 왜 우노?"


"엄마가 데리고 오겠지."


난 그때도 무심했다.

우는 소리가 커지자 아빠가 달려갔고 아이를 안고 왔다.

엄마는 날 키울 때도 스파르타식 교육이었는데

손녀에게도 그랬다.


깁스 두려워하지 말고 조금씩 걷게 해 보라고

엄마가 앞서 걸었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못 걷는 나를 혼자 두고

엄마도 할배도 할매도 가버린다고 생각했다.


떡 가게 이모가

"아이고 억수로 아픈가 보네." 하며 초코떡을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본인 손에 달달한 떡이 잡히자

눈물을 멈추고 할배 품에서 떡을 구경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집에 와서 아이 혼자 걸으며 이 상황은 넘어갔다.



봄에 일어난 일을 아이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병원에 수술 대기 하고 있는 동안

엄마는 아이 옷을 입히고 병원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가 엄마 손을 안 잡고 신나게 앞서 가자

엄마는 아이에게

"할매 손잡고 가야지. 할매 다리 아파서 빨리 못 걸어. 천천히 가야지."

하며 아이를 불렀다.


"할매는 저번에 나 버리고 갔잖아. 할매는 나쁜 사람이야. 신고할 거야!"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멘트에

엄마는 하루 종일 신경 쓰여했다.


더군다나 병원에서 기다리다 지겨워

1층 투썸 카페에서

엄마와 함께 케이크도 먹고 주스도 한잔 마시다가

또 케이크가 먹고 싶었는지

"할매 당근 케이크도 사주세요."

했다.


엄마는 너 이미 많이 먹었는데 그만 먹자며 아이를 말렸고 후에 엄마 친구분이 와서 커피 마시는데

엄마 친구 분에게 아이는

"할매 신고 할꺼야.할매는 두 번이나 나한테 잘못했어. 나 두고 먼저 가고 당근 케이크도 안 사주고" 하며 또다시 말을 꺼냈다.


엄마 친구 분은 모든 상황을 듣고 우스워했지만

엄마는 속으로 손녀딸에게 트라우마를 만들었나 싶어 걱정이 컸다. 겉으로 웃으면서도 속으로 걱정이 되어 수술하고 집에 가는 나에게 설명 좀 잘해주라고 당부했다.

집에 와서 다시 한번 설명하고

할매는 절대 너를 버리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명심 또 명심시켰다.


우리 가족 모두 널 사랑한단다.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이젠 신고한다는 등 고소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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