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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Oct 25. 2023

그 엄마의 그 딸 2

장난도 닮는구나.

밤에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이에게 양치와 세수를 하라고 했다.

순순히 들어가 씻는 줄 알았다.

아이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도 불안하다.


하지만 오늘은 방심했다.


너도 음악회 연습으로 피곤하겠거니

이젠 6세 언니답게 의젓해지는구나.

백만 년 만에 한번 엄마의 잔소리 없이 잘 준비를 잘하는 아이구나


아이를 믿었다.

아이는 믿음으로 크지만 그 믿음은

늘 충격으로 돌아온다.


아이가 호기롭게 다가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설거지 마무리 하는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양치 잘했나 봐 죠. 아~"


양껏 입을 크게 보이며 의기양양한 아이를 보자

귀여웠다.


"오늘 너무 잘했네. 근데 옷이 다 젖었네?"


"응. 세수하다 보니 젖었어. 오늘 한 번에 성공이야? 양치 잘했어?"


내 새끼지만 귀여운 목소리로 물어보는데

그 초롱한 눈에 대고 엄마가 한번 더 해줄게

하며 붙잡을 수가 없어

한방에 성공이라며 말해주었다.

아이도 신이 나 방에 들어가

로션 바르고 잠옷도 다시 갈아입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다 한 나는

욕실에 들어가 양치를 하려다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세면대 배수구에 흠뻑 젖은 화장지가 막고 있었다.


"요놈의 시끼!!! 너 엄마가 화장지 배수구에 버리지 말라고 몇 번 경고했지!!"

혼자 씩씩거리며 나와

나무젓가락을 찾아

배수구를 뚫어야 했다.


아이는 엄마가 화 많이 난 것을 인지하고 조용히 있었다.

나름 깨끗하게 청소한 후 방에 가

아이에게 꿀밤을 주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너 엄마가 전에도 경고했지? 네가 뭐 잘못했어? "


"엄마 미안해. 화장지 쓰레기 통에 안 버린 거..."


꿀밤 맞은 이마를 문질문질하며

서러운 눈물을 참으며 말을 하는데

이 정도 일로 애를 너무 혼내는 건가

미안했지만 일관되게 화난 엄마 모습을 유지했다.

다신 안 그런다는 약속을 받고

아이를 재웠다.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며 엄마가 무섭게 화내서 미안해하며 꿀밤 맞은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과거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내가 아이만 했을 때

할머니 댁에 커다란 어항에 큰 사고를 쳤었다.

아이가 양팔을 벌린 길이의 긴 어항이었다.


아마 해수인과 생물도감님이 들으면 기절할 장난이다.


화장지로 종이배(?)를 접어 띄우고

새우깡에 실을 묶어 낚시를 했다.

큰 어항에 살면 구피와 금붕어 같은 여러 물고기들 집들이 난리가 났었다.

바닥으로 가라앉은 과자들 휴지들

둥둥 떠다니는 퉁퉁 불은 새우깡

그것도 모자라 휴지는 젖으니

신문지로 종이배를 접어 둥둥 띄워놓고 놀았다.

신문지도 젖자 다시 꺼내

신문지로 만든 종이배 양 끝은 살짝 잘라

다시 펴면 티셔츠 모양이 되는데 말린다고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고

잠이 들었다.


일 보고 오신 할머니는

처참해진 어항을 보고

속으로 엄청난 분노가 끓었을 텐데...

할머니는 어항 청소하는 걸 돕게 했다.

모형 해초와 장식구를

색색의 잔잔한 자갈(?) 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빡빡 씻었다.

그 무겁고 거대한 유리 어항을 욕실에 들고 와

할머니와 같이 새거처럼 빡빡 씻었다.

그리고 물을 채워

물고기들에게 사과하며 어항에 부워준

지난날의 추억 (?) 이 있다.



10년 전 할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할매 그때 왜 화 안 냈어? 나 같음 엄청 화나서 혼냈을 거 같은데...."


"똑똑하니까 장난도 치지. 내 손녀가 이미 저질러 진걸 혼내면 뭐 할 고 청소나 돕게 해야지."


할머니는 엄청 현명하셨다. 혼나는 걸 떠나

같이 청소하며 더 많이 반성했기 때문이다.


사고는 내가 더 쳐놓고

아이를 혼내다니...

나도 할머니처럼 했어야 했는데...

자는 아이 보며 반성 또 반성이다.



그 엄마의 그 딸이라 장난꾸러기 인 걸

잊지 말아야겠다.

다신 방심하지 않으리라...


(근데 딸아 엄마 따라가려면

많이 멀었다.)




https://brunch.co.kr/@2ca9bf8251234e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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