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립과 독립성 키우기 : 명료함
정신이 명료함은 열정도 명료함을 뜻한다. 때문에 위대하고 명료한 정신을 가진 자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분명히 한다. - 블레이즈 파스칼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착하고 다정한 성격에, 이상하게도 그 사람 앞에서는 함부로 말하거나 대할 수 없습니다. 상사가 아니어도, 그 사람 앞에서는 왠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신경이 쓰입니다. 마치 차렷 자세로 두 손을 모은 채 오랫동안 풀지 못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 사람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하나하나가 간결하고 명료합니다. 그 말에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습니다. 메시지가 정확히 전달되는 힘, 그리고 그로 인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는 타인에게 여지나 틈을 주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온화하고 여유로운 표정 뒤에, 결정적인 한 마디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절대 엮이기 싫은 귀찮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억측이 많고, 사소한 일에도 소란을 피웁니다. 불평불만이 많고, 감정의 기복도 심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을 분석해본 적이 있나요? 그들의 말은 군더더기 투성입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중언부언합니다. 왜 그럴까요? 감정에 휘둘리며, 남의 말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감과 자기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말이 길어지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반면, 명료한 말은 미니멀한 감정 상태에서 나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은 그 말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를 돌아보면, 예전에는 사이다처럼 직설적인 말투가 익숙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까칠한 표현들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톡 쏘는 탄산의 기운을 조금씩 빼며, 천천히 은은하게 격이 있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가졌던 서슬이 강한 기운을 조금 덜어낼 방법을 고민해본 결과,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감정에 휘둘려 강조하고 싶은 말을 우다다다 반복하는 습관을 없애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을 읽으면서, 글과 말은 결국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반복되는 낱말을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한 문장 안에서는 같은 낱말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합니다. 이 점을 우리의 말에 적용해보면, 말을 할 때 중언부언을 피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 명료함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표현에서 '촌'은 보통 성인 남자의 손가락 한 마디를 뜻하고, '철'은 쇠로 만든 무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촌철’이란 한 치도 못 되는 무기입니다. 만약 우리의 말에 촌철이 아닌, 엿가락처럼 늘어진 말이라면 그것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나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나의 말을 점검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명료함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명확히 한정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거절과 허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확히 알고 상대에게 그것을 알려주는 것, 결국 그런 의지의 반영으로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허투루 일 수 없게 되며, 그로 인해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말의 명료함은 단순히 소통을 위한 효율성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믿음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말을 정확히 전달하고, 상대방이 그것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말에는 자연스럽게 힘이 실리고, 관계도 더 깊고 견고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범준의 말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쓸데없음’, ‘영혼 없음’, 그리고 ‘괜한’이 포함된 말들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할 말을 하기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덕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