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은 뭘까요. 어떤 이는 더 이상 희망을 찾아 움직이지 않는 걸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나이 들면서 더이상 본인에게서 희망을 찾지 않고, 주로 남에게서 기댄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요. 남편에게 스타트업도 나이를 많이 보는 거 같다고 하니, 비수처럼 콱 꽂힌 말, “고용주 입장에서 바꿔 생각해봐. 나이도 스펙이야. 나이가 많은 직원을 쓰고 싶겠어?”
그도 그럴 것이, 메타(옛 페이스북)의 수장이 36세 수전 리라는 여성으로 내정이 되었을 때 이는 안전한 길보다는 잠재력에 배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14년 재무경력자 그녀의 어떤 면을 보고 잠재력이란 걸 찰떡같이 발견하여 떡하니 맡겼을까. 참 궁금했죠. 그리고 오버랩되는 전 여당 대표, 한땐 그도 대한민국 꼰대 정치에 부는 참신한 새바람이었는데 말이죠.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진실로 어느 날 이전보다 새로워졌다면 나날이 새로워지고 더욱더 나날이 새로워져라’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발전을 요구하는 공자의 말씀...해변가에 있는 돌도, 파도에 부딪치고 세월에 깎여 마모되고 둥글어지는데, 날을 세우고 구태를 지적하며 변화를 꿈꾸고자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라는 이야기는 참 마뜩잖습니다. 세월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역행하는 겁니다. 정말 나이 들면서 나날이 제대로 새로워진다는 건 생각만치 참 쉽지 않더라고요.
<고양이를 버리다>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버지와 그가 성장한 시대도 환경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고 세계를 보는 시각도 다른 게 당연한 일이라고 하면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관계의 재편성을 시도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접점을 찾기 위해 시간과 품을 들이기보단 아무튼 눈앞에 있는 그가 하고 싶은 일에 힘과 의식을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이죠. 아버지와 겨우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했을 시점이 저자 나이 예순, 부친 연세 구순이었다고 합니다. 아 단전 밑에서부터 오는 깊은 탄식!
어쩌면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것이, 적은 것이 내세울 만한 지위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보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상대방을 인정하고 역지사지로 이해하면 됩니다. 로버트 드니로가 시니어 인턴으로 나온 영화<인턴>에서 그가 이런 대사를 칩니다. “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다.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 내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있다. ”
시니어인턴이든 30대 차기 CEO든 전직 당대표든 삶이란 건 죽을 때까지 인정투쟁하는 각자의 독무대니 서로의 인정투쟁을 용인하면 됩니다. 나이든다 해서 나이적다 해서 각자의 기준으로 의기소침해 스스로를 궁지에 몰 필요도 없고 본인만의 정통성을 세우며 꼿꼿하게 갈 길 가면 그뿐
총알 같이 되돌아오는 남편의 대답에 나의 혼잣말은 “뭐 아님 마는 거지 뭐. 그냥 받아들일게.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장마오고, 가을에는 낙엽지는, 인생의 계절 중 겨울을 나고 있다면 잠룡하라는데, 근데 나는 언제까지 겨울이냐. 여보 에어콘 18도로 틀었어? 벌써 겨울이야? 아님 매번 겨울이네. 얼어죽겠네.” 그래서인지 뜨끈한 생강차로 목 지지고 여지껏 쓴 글들 모아 책이나 내게 정상태의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투고의 왕도나 뒤져보며 땀이나 뻘뻘 흘리고픈 40대 중반 여인의 시간은 이렇게 속절없이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