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자리를 보고 글쓰기

by 변한다

이렇게 온몸 전체가 노곤하기도 참으로 오래간만입니다. 1만여보를 그룹홈에 거주 중인 아이들과 함께 걷었습니다. 폭염에 숨 막힐만 하면, 입추라 그런지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 덕분에 겨우 살아 돌아왔습니다. 주말마다 사회복지 실습을 하는데, 집에서 온종일 손가락 운동인 게임에 눈알 운동인 유튜브 시청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서든 끌고 나와 걸으면서 강아지풀도 뜯고 메뚜기도 잡고 왜가리도 설명해주고 하는 게 그들을 위한 거라 생각했습니다.


free rider, 피곤에 절어 정신이 혼미해도 명징하게 보이더군요. 실습생 중 프로그램 계획도 하나 해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매주 얹혀서 청소, 빨래하고 에어콘 바람만 쐬는, 아침과 점심 땐 다른 젊은 실습생들이 차려주는 밥을 사양하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드시는 세상 편한 분들은 주로 연세가 지긋했습니다. 정작 실습은 하지 않고 다른 실습생들이 하는 걸 관찰하고 쓰는 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그 꼿꼿하고 당당한 태도에 폭염주의보 동급의 숨막히기 일쑤였죠. “어르신은 실습생이지 클라이언트가 아녜요. 그리고 실습일지는 전지적 참견 시점의 관찰일기가 아닌데요.” 따따부따 지적하고 싶은 불같은 마음을 가까스로 눌렀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비교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단카이세대 특성을 다룬 기사가 문득 생각납니다. 그들은 누가 부르건 부르지 않건, 필요한 곳은 알아서 찾아다니며, 행색은 잠바에, 가방 하나씩 둘러매고는 청년처럼 돌아다닙니다. 특히 지하철에서는 자리에 앉지 않는 게 당연하고 웬만한 거리는 건강을 위해서도 걷습니다. 젊은이에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다는 그들은 가능한 스스로 움직이며 자립적인 생활을 하려 부단히 노력한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에게 부족함이 있다는 걸 안다는 전제에서 비롯됩니다.


누구나 나이 드는 건 자연스럽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대접을 받겠다는 건 그리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사람이라면 무릇 그만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 책임과 의무가 줄거나 덜해지지는 않고 누군가가 그걸 대신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권위는 나이 들었다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상대적인 것이며, 대우받기 위해 상대방을 배려하는 노력이 보인다면, 그만큼 결국 본인에게 더 돌아오는 게 세상 인심입니다.


품위란 다른 이들과 기본적인 연대 의식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또한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크든 작든 모두 동일하게 중요하며 이를 일상의 모든 상황 속에서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에서 저자 악셀 하케는 말했습니다. 이는 사회복지사 윤리강령과 오버랩됩니다. “사회복지사는 인본주의·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천부의 자유권과 생존권의 보장활동에 헌신한다. 특히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선다. 또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제도 개선과 관련된 제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


갑자기 무슨 공자왈 맹자왈이냐 하겠지만, 사회복지 관련해선 어떻게든 무임승차해 본인들의 소기 목적만 달성하면 단순히 끝이 아닙니다. 결국 그들이 행하는 서비스는 어떤 품질을 갖출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고, 피해는 오롯이 클라이언트들에게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정색과 우려가 결코 쓸데 없지 않으며, 안티 노인 공경이라고 쉽게 치부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모든 전문직이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가진 전문성과 전문직의 품위와 유지를 지키기 위한 ‘책무성’을 다하는 노력은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이들에겐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고작 실습생 나부랭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비전문적인 프리 라이더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지 별 수 있겠는지요. 죽을 때까지 진정 어른답게 체면을 차리면서 품격있게 일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싶습니다. 오래간만에 피터 드러커의 <프로패셔널의 조건>을 보고 마음을 다잡으며, 모처럼 필사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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