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사색
심봤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엔 내가 사는 도시의 도서관에서 여섯 권이나 더 대여할 수 있어서 한아름 싸가지고 왔다. 마치 오픈런에서 품절 직전 상품을 득템한 사람처럼 싱글벙글, 헌데 ‘이걸 다 읽는 거야? ’소파 앞 탁자에 너저분하게 놓아져 있는 이 책 저 책에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그렇다. 책들을 성처럼 쌓아놓고 한 대여섯권을 펼쳐놓고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뒤적뒤적 읽길 좋아하는 나는 약간 산만한 건 아닌가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다.
ADHD 관련 37년 임상경험이 녹아있는 반건호의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에서 저자는 주의력결핍은 주의산만과 특정주제에 대한 과도한 몰입, 과도한 호기심 등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했다. 주의산만은 다양한 연상과 백일몽이라든지, 다중과제 등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사고의 틀과 범위가 넓어질 수 있는 게 어떻게 보면 일종의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체게바라도, 디즈니나 이케아 창업자도,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도 주의력결핍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판단은 산만하고 한 곳에 사려 깊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특정한 부분에서 집중하고 개발을 도모할 수 있는 힘이나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일은 양면이 있고 꼭 좋은 것도 꼭 나쁜 것도 없으며 결국 강점은 강하게, 약점은 약하게 키우면 되는 거 아닌가란 나의 생각이 포개진다.
여러 책을 한꺼번에 보면서 결이 맞지 않은 구석을 발견했거나 지루함에 순식간에 밀려와 확 덮을까 말까 살짝 고민할 때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을 생각한다. 저자는 한 책을 끝까지 책임을 지려하지 않아도 된다 했다. 빌려놓고 읽히지 않는다면 읽기를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 거고, 꼭 완독할 이유는 없다 했다.
살며시 고백하나 하자면, 저자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완독은커녕 표지와 목차만 보고도 직감적으로 바로 포기한다. 지난 봄부터 한 달에 한 권 어느 큐레이션 책방에서 보내주는 책 같은 경우 알고 보니 주로 철지난 소설이나 그림책 위주라 받자마자 중고서점에 팔거나 나대신 좋아할 것 같은 지인에게 선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 한 켠에는 이 주인장이 얼마나 고심하고 또 고심하고 고른 책인데 내가 이렇게 이 노고와 정성에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무자비한 단호함을 드러내는가 싶다가도, 읽는 건 결국 나인데 내 판단과 선택이 뭐 어떠하랴. 책을 진정 사랑하는 큐레이터라면 다른 이들의 취향 또한 존중해줄 거라는 옅은 기대도 역시 다른 책을 보면서 드는 거라 주의가 산만한 것은 아무튼 틀림없는 빼박인 거 같다.
다시 소파 앞 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당장 읽으라는 것인지, 어서 치우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널부러져 있는 많은 책들 중 무얼 먼저 읽을까. 아차차 예약이 걸려있는 칩 히스, 딘 히스의 <후회없음> 표지의 초록빛 강렬함에 이끌려 어느새 손이 가 있다. 선서! 독서의 계절 가을의 달이 무겁게 차오르는 오늘밤, "인생 선택"을 만드는 4가지 기술을 담은 이 책을 모처럼 완독 야무지게 하리라. 미처 다 읽지 못해 반납유예 선언으로 민폐를 끼치면 안되는거지. 아무렴 책을 좋아하는 우리들은 서로서로 그럼 못쓰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