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동산 위.
마을을 지켜주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햇살을 머금은 잎이 살랑이며 속삭이고, 넓게 뻗은 가지가 드리운 그림자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어린아이는 언제나 그 나무 아래에서 소망을 꺼내 놓았다.
두 손을 모은 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부드럽게 지나가며 작은 거인의 꿈을 어루만졌다.
무수한 꿈을 지닌 그 아이는 어느새 자라 청년이 되었다.
여전히 맑은 눈동자에는 뜨거운 열기가 더해졌고, 그는 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청춘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청년은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길을 잃었고, 지친 마음을 이끌고 다시 나무를 찾았다.
그곳엔 여전히, 변함없는 나무가 서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를 기다려왔다는 듯이, 나무는 푸른 잎을 흔들어 청년을 맞이했다.
지친 그의 어깨 위로 시원한 바람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청년은 어느새 자녀를 가진 아버지가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의 꿈을 말하는 대신,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로부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장성한 자녀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노인을 만나러 왔다.
청년이었던 그는 이제 모든 것을 경험한, 깊고 꿰뚫는 눈을 지닌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한때 반짝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씁쓸한 듯 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맞이할 죽음.
이제는 맞이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내일.
그는 지나온 세월을 그려보았다.
오랜만에 찾은 동산.
그러나 마을을 지켜주던 나무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잘려나간 자리엔, 오래도록 그를 기다렸을 세월의 흔적이 나이테로 새겨져 있었다.
노인은 조용히 밑동 위에 앉아보았다.
바람이 살며시 불었다.
"기다리다 먼저 갔군. 친구여, 곧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