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할머니께
할머니께
기억의 가장 깊은 곳, 빛이 처음 깃든 시절부터 언제나 곁에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작은 손을 꼭 붙잡고 담뱃가게에 들러 토큰을 구입하던 일상, 부전시장행 버스를 함께 타고 지나던 골목마다 담백하고 정겨운 어르신들의 담소가 스며 있었습니다. 그 모든 풍경 위에는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하셨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은은한 배경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는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 그러나 그 이름을 부르던 울림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조용히 되살아납니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그리움이 가슴을 천천히 물들이고, 끝내 사무치는 마음이 목 끝을 저미듯 차오릅니다.
먼 길 떠나신 지금, 그곳은 고요한 평안의 자리이기를. 삶의 무게와 고단함으로부터 비로소 놓이셨기를 조심스레 기도합니다.
삶의 어느 지점부터였을까요. 할머니의 사랑은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졌고, 그 크기를 헤아릴 줄도, 제대로 표현할 줄도 몰랐습니다.
“다음에,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수없이 되뇌던 다짐들은 결국 실현되지 못한 채 공허한 말로만 남았습니다.
곁에 계시는 동안 더 따뜻하게 안아드리지 못했고, 더 자주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으며, 진심 어린 말 한마디조차 제때 전하지 못했습니다.
늘 곁에 있어줄 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은 사랑을 행동으로 옮길 기회를 자꾸만 미루게 했고, 그 미룸은 결국 영영 닿지 못할 후회로 남았습니다.
그리움은 깊어지고, 마음속에는 부채처럼 접힌 죄송함만이 조용히 쌓여갑니다.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닿지 않는 이름이 되었지만, 그 손길이, 그 눈빛이, 그 미소가 잊히기는커녕 더욱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비로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음 생에는 아무런 짐도 지지 않으시고, 근심도 책임도 내려놓은 인생으로 태어나시기를. 세상의 염려와 돌봄에서 자유로운, 아름다움과 평온을 마음껏 누리는 삶으로 돌아오시기를.
생전 “예쁜 게 무슨 소용이냐”라고 하시던 그 말씀은 들을 때마다 마음을 아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삶에서는 예쁜 것을 보면 망설임 없이 웃으시고, 예쁜 것들을 자연스럽게 좋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할머니가 아닌 오롯이 ‘하나의 사람’으로, 자기 이름을 가진 존재로,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가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만일, 아주 먼 훗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전하지 못한 모든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웃어드리고, 보답하고 싶습니다.
삼가, 깊은 존경과 그리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