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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머물다 간 자리

by 봉수니

하얀 눈이 조용히 작별을 고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떠나기 전, 빈자리를 채울 작은 선물을 남겼다.

눈이 남긴 선물은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

눈이 머물던 자리에서 새싹은 조용히 자리 잡고, 살랑이는 봄바람과 벚꽃 향기가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겨울의 흔적이 사라지고,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작은 신호.

새싹은 1년을 함께하며, 다시 눈이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여름

무성한 풀들 사이로 풀벌레 떼가 합창을 이룬다.

한낮의 무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풀벌레의 연주를 듣는다.

그 여유로움이 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는 것만 같다.

마룻바닥에 누워 가만히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젖은 땀을 조용히 닦아준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집 앞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그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밤공기처럼 시원하게 퍼지고, 순간 남아 있던 더위마저 희미해진다.

여름은 계절의 반복 속에서도 나를 설레게 한다.

매번 지나가지만, 언제나 다시 그리워지는 계절.


가을

더위가 물러나고, 공기 속에 찬 기운이 스며든다.

옷장 속 깊이 넣어두었던 코트를 꺼내 입고, 가까운 강변 산책로를 걷는다.

길 곳곳에 낙엽이 한 잎씩 내려앉고, 단풍나무들은 붉고 노란 옷을 차려입는다.

나무 아래, 통기타 하나를 들고 노래하는 이가 있다.

그가 선사하는 선율에 행인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어느새 음악에 스며든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과 황금빛 하늘, 단풍나무의 선명한 색채가 어우러져 공간을 물들인다.

가을은 흔히 이별과 쓸쓸함의 계절이라 하지만,

어쩌면 가장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계절이다.

어느 날보다 붉게 빛나고, 잔잔한 마음으로 사랑을 읊을 수 있는 그런 계절이니까.



겨울

겨울밤, 문득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었다.

방 안을 채우던 온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서늘한 기운이 스며든다.

모두가 잠든 새벽.

은은히 빛나는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면 어둠뿐이다.

고요 속에서 내 숨소리마저 또렷이 들린다.

창문에 기대어 입김을 불어보았다.

허옇게 피어오른 숨결이 창밖으로 흩어진다.

겨울은 차갑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따뜻함이 스며 있다.

그 온기를 잊지 못해, 겨울은 늘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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