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아가 나오기 전에 제일 멋진 몸을 만들어야지
3 돈이라도 벌어서 버텼는데 부도가 나버렸네?
불안한 감정은 더해가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그냥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래도 내일을 열심히 본인 일인 것처럼 함께 열심히 해주는 매니저 언니도 있었고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수익이 나는 일도 있잖아. 스스로 위로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계속했다.
남편은 남편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했다. 남편은 본인이 와이프에게 잘해주고 싶은 그 순간에만 엄청나게 좋은 남편이었다. 이벤트는 언제나 어마어마하게 해 준다. 어느 누군가는 그 모습만 보자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남편이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어느 그 한순간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24시간을 공유해야 했다. 아주 잠깐 나에게 좋은 남편역할을 수행하고도 자기는 본인이 한 그 순간값을 기준으로 본인을 엄청나게 좋은 남편이라고 세팅해 버린 사람이었다. 남편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곳에 온 더듬이를 세우는 사람이라 일도 노는 시간을 제외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래 좋은 순간이 있으니 다른 시간들은 내가 채워보는 게 맞겠거니 생각했다.
바라보는 곳이 달랐지만 문화의 차이일 거라 생각했다. 같이 하자고 하는 모든 일들이 나는 재미가 없었다. 술을 마시고 클럽에 가거나 낚시를 하거나 서핑을 하는 일들이 나는 크게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일들을 같이 많이 해보긴 했었지만 이런 것들을 할 때 남편이 혼자 다녀오면 더 좋았다.
나 또한 누구한테 의지하거나 누군가가 항상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내 시간이 주어짐이 더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주버님의 친구가 불고기 비즈니스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우리 집에서 지내기 전에 아는 지인의 부탁으로 근처 회사에서 일하던 나보다 두세 살 많던 오빠들이 몇 개월 우리 집에 하숙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집이 많이 커서 생활 반경이나 패턴이 아주 달랐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 칠일은 거의 없었는데 한 번씩 마주치면 좋은 말들을 해주곤 했다.
내 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 들이였다. 결혼도 안 해 본 오빠들이었는데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그런지 어른스러웠던 것으로 기억이 되었다. 호주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작은 선물과 편지를 주었다.
그 편지에는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멋지고 예쁘고 똑똑한 사람인지를 잊지 말라는 내용이 정말 따뜻한 어조의 말투로 정성스럽게 적혀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가치 있고 멋진 사람인지 본인은 비혼주의자이지만 혹시나 본인이 결혼을 하자면 나 같은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야겠다고 했다. 혹시나 한국에 올일이 있다면 그리고 내가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본인이 기꺼이 그 사람이 되어주겠노라며 연락처가 적은 편지를 전해 받았다.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내가 무얼 잘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
내가 불행해 보였나?
무엇이 그를 이리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일까?
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잘못된 선택을 해버린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많은 물음표가 들었지만 깊은 생각을 하기엔 할 일이 여전히 많았다. 그냥 나는 또 매일매일을 살았고 남편이 가져가는 돈들을 감당해야 했고 남편이 하는 비즈니스를 서포트하고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첫째 아이를 임신을 했다. 정말 임신을 한 그 1달 안에 임신한 줄 느낄 수 있었을 만큼 정말 입덧이 너무 심했다. 그 어떤 것도 삼킬 수 없었다. 그래도 평소 몸무게가 45kg 은 되었는데 눈에 띄게 살이 빠져갔다. 하루에 물 두 잔과 레몬주스 한 병을 다 마시기가 어려웠다.
우리 부부에게도 2세를 가졌다는 환희의 순간이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남편은 그 순간이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은 아기가 나오기 전에 본인이 더 멋진 몸을 만들어야겠다며 더더욱 운동에 매진했다. 약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하루에 한 끼를 삼켜내려고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침대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에게 동냥하듯 간단한 음식을 던져주곤 남편은 운동을 하러 다녔다. 한 번씩은 남편과 같이 일하던 형이 주방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라 내가 좋아하던 음식들을 해주곤 같이 운동을 갔다.
보통 아내가 임신을 하면 어깨가 무거워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책임감이 들어서 어깨가 무거워지고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한다 하지 않았던가. 나의 남편은 언제나처럼 예상을 뒤엎었다. 아기가 나오면 얼마나 잘하려고 저러는지 아빠가 되면 하지 못 할 일들을 도장꺠기 하듯, 남편은 아기가 생기면 하지 못할 법 한일들을 버킷리스트로 정해놓고 그것을 채워나가는 데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아기가 생기기 전에 보통사람들이 준비하는 것들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이제는 내가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서 살아남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어 버렸다. 살이 미친 듯이 빠지기 시작했다. 잠을 자도 자도 계속 자야 했고 깨어있는 시간은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을 겨우 컴퓨터 앞에서 해내야 했다. 외출을 하기도 힘들었다. 가끔 남편과 외출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하루 스케줄에 넣을 수 없었다. 심지어 입덧으로 인해서 너무 많이 토를 하다 보니 임산부 보조제마저도 몇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삼켜내야 했고 이 모든 행위들은 그저 아기를 위해서 해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결심했다. 1 분 1초를 아기를 위해 살아보기로 강제로 다짐했다.
먹지도 못하고 깜깜한 곳에 혼자 있다 보니 생각에 한계가 생겼다. 우울하다고 느끼기도 벅찰 정도로 체력에 한계가 생겼다. 한국에 전화해서 낄낄댈 기운도 없다. 내가 나 스스로도 돌볼 수 없고 주도적으로 내가 무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의지를 해야 하니 정말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