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할 줄 알고 호주에 왔는데 먹고살 길이 없네?
나는 결혼 준비를 위해 한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오는 건 너맘, 가는 건 나맘"이라며 “보통 한국에 갔다 올게 하고 가면 안 돌아오니까 가지 말라"라고 하며 여권이며 티켓이며 본인이 가지고 있겠다고 했었다.
“응? 이렇게 그냥 결혼한다고? 프러포즈도 못 받았지 않냐?”라고 했더니, 남편은 “첫날 만났을 때 바로 프러포즈했고, 한국으로 찾아와 꽃 들고 학교에 찾아왔던 게 프러포즈였다”라고 했었다.
나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었다. 결혼이 뭔지, 평생의 반려자가 뭔지 그냥 정말 휘뚜루 마뚜루, 파도에 휩쓸린 나뭇잎 같은 느낌이었다. 평생 어떤 배우자와 함께 해야 하는지 그런 고민도 한 번도 없이 이래도 되나 싶었다. 자기만 믿으라며 밀어붙이는 모습도 뭔가 든든한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결혼은 아무 생각이 없어야 할 수 있다는데 이런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나는 아픈 사람이 진짜 싫다고 우리 아빠 10년 넘게 누워계시다 돌아가셨고, 오빠나 나나 아직 어려서 가진 것도 없고 불안하지만 오빠가 건강해 보여서 다른 거 안 보고 그래도 결혼할 수 있는 거라면서 건강관리 잘하라고 얘기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건강 하나는 본인이 자신 있다면서 호언장담을 해대던 모습이 뭔가 안심할 수 있게 해 줬고, 한국에서 불편한 상황들에 도망치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았다. 너무나도 헷갈리던 차에 한국에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엄마한테 결혼식을 해야겠다고 전화를 했었다.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다. “잘 됐다”라고 하시더라. “응? 도대체 뭐가 잘돼? 대학교도 졸업 못하고 21살밖에 안 된 막내딸이 결혼한다는데 잘됐다고? 보통 졸업은 하고 결혼해라 하시지 않아?” 많이 의아했지만 좋은 게 좋은 느낌이었다.
그 후론 아주 순식간에 모든 게 흘러갔다. 그 당시에 한국에 계시던 어머니, 아버님과 우리 엄마가 만나셨고, 우리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버님을 만나고 나니까, “남편감을 확인해 보려면 그 아버지를 보면 된다. 평생 저렇게 자수성가하셔서 성공하시고 지금껏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사시는 거 보면 괜찮겠다고” 하셨다. 결혼식 날짜를 잡으시고 어머니와 엄마가 호주에 들어오셨다.
이리저리 엄마랑 어머니랑 여행도 다니고 여기저기 인사도 드리고 그렇게 시간을 다 같이 함께 보냈다. 첫날 인사도 받지 않으셨던 어머니도 엄청 살갑게 대해 주시고, 남편의 모든 생활 반경에 내가 쏙 들어갔고, 엄청 환영받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의 형 식구들도 만나게 되었는데 큰형 와이프가 나한테 이상한 말을 했었다. 그 당시 남편이 다이아몬드 도매업체에서 일하고 있어서 직원 특가로 결혼 예물 다이아반지를 싸게 해 주셨는데, “어떻게 형님인 나보다 너한테 나보다 더 큰 다이아를 사줄 수 있냐”라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셨다. 그랬는데 어머님이 형님께 “너 돈 좀 있어 보이니까 해줄 거 해주고 좀 받을 거 받아보게 가만히 있어 보라”라고 하셨대. 그러면서, “여기 이상해.. 정상 아니야. 지금 도망갈 수 있을 때 도망가.. 너 어리고 순진하고 착해 보여서 얘기해 주는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시더라. 그때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형님이 다이아 반지가 가지고 싶어서 그런가? 설마 그랬을까?” 그래서, “난 다이아 크기 상관없으니까 내 거 가져가라”라고 했지? “됐다고 거절해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았는데, 뭔가 꺼림칙한 기분은 계속 가지고 있었다.
나는 호주에서 외국인이라 호주 비자를 얻기 위해 자격증이 있는 주례사가 있는 결혼식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래서 주례사만 모시고 간단히 공원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결혼식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호주에서는 그냥 형식상 결혼식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결혼 날짜에 비가 올 확률이 높다는 소식에 어쩌지 하고 있었는데, 여행사에서 일하던 남편친구가 크루즈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했다. 최신식 크루즈여서 각국에서 여행 온 관광객들이 시드니의 유명 포인트들 오페라하우스, 서큘라 키, 달링하버, 하버브리지 등을 크루징 하는 코스로 유명한 배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 호주에서 제일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우리 결혼하던 바로 2주 전에 약혼식까지 했던 아주 화려한 3층짜리 크루즈였었다.
갑자기 결혼식 날짜 3주 전인가 배를 예약하고, 시간이 없어서 결혼식 준비를 알아보고 어쩌고 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예전에 하숙했던 집 언니가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녀주면서 그 짧은 시간 안에 알뜰히 살뜰히 챙겨 주셨다. 드레스랑 미용실도 동네에서 고르고 크게 고민 없이 모든 결정이 착착 이루어졌었다. 그냥 문자로만 여러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남편 친구가 웨딩사진도 찍어주고 결혼식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정말 많이 도와줬고. 짧은 시간에 정말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3층 데크에서 찍은 모든 사진에는 오페라하우스며 하버브리지며 정말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주었고, 걱정과는 달리 하늘도 정말 파랗고 예뻤다. 결혼식이 끝나고 호텔에 갔을 때, 어떤 한국 관광객이 혹시 그 배에서 결혼한 사람이 아니냐며 너무 좋으셨겠다고 축하한다고 얘기해 주고 갔을 정도였었다. 그 순간 정말 기뻤고 신기했었다. 뭔가 앞으로 이렇게 화려하고 멋진 나의 인생이 펼쳐지겠구나 엄청나게 기대됐었다.
결혼식 날에 남편은 엄청나게 취해서 두 발로 배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는데 그냥 특별한 날이라 그런 거겠지? 했었다. 사람이 이렇게 정신이 없을 수 있는 건가 싶었지만, 뭐 특별한 날이라 긴장이 풀린 거겠지… 했었다. 정신없는 여러 가지 행사들은 다 마치고, 결혼식 비용도 우리 엄마가 다 부담해 주셨고, 용돈도 두둑이 주시고 한국에 돌아가셨다.
긴장이 풀리고 난 며칠 후 생각해 보니 남편이 직업이 없었다. 잘 다니던 다이아몬드 도매업체에서 일이 있어서 퇴사를 했고, 이렇다 저렇다 할 직업이 없었었다. 이제 뭐 먹고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