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Jul 11. 2022

1. 점심을 제가 준비해도 되겠습니까?

수육

        

 나는 사회복무요원. 흔히들 신의 아들, 공익이라고 부르는 4급이다. 우리 지역은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공익 자리가 너무 안 났다. 결국 산업체로 빵 공장에 들어갔는데 일도 고되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너무 별로여서 한 달 일하고 도망갔다. 


 나약하다고 욕해도 할 말이 없다. 엄마 이상 나이대 이모들이 아들 같다고, 기특하다며 잘해 줬지만, 단순 노동이 주는 고단함, 꼰대 같았던 관리자, “인턴 3~6개월을 거친 후에 산업체로 인정받는다.”는 말을 듣고는 2년 이상을 빵 공장에서 버틸 자신이 사라졌다. 


 도망친 나는 영장이 나올 때까지 프랜차이즈 페밀리 레스토랑 주방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내가 일했던 대형마트의 분식집, 큰 레스토랑, 그리고 대학교에서 보고 배우고 해왔던 일이라서 쉽게 적응했다. 계약을 연장하려는 그다음 해 1월 즈음 영장이 날라왔다. 미련 없이 퇴사서에 사인을 했다. 사실 미련이 많았다. 조금만 더 하면 정규직 이야기가 나올 거 같았고 같이 일한 사람들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퇴직금. 조금만 더 근무하면 나올 상황이었다. 친구들 SNS에는 누군가 상병을 달았다고, 누군가는 벌써 전역했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복무지는 우리 도시의 본 소방서. 나는 각종 잡일과 환자 구급 보조를 했다.약 1년 정도 근무를 한 뒤에 우리 도시에서 가장 바쁘다고 소문난 119안전센터로 발령났다. 정말 본서에 비하면 작은 센터였다. 그렇지만 주간에 구급 출동이 9건 넘게 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었다.


 내 성격은 낯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다. 남들 앞에 서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두려움을 뒤로 하고 센터에 들어가 인사를 했다. “새로 발령받은 사회복무요원 강제규입니다.” 전에 있던 센터에서 스쳐 가며 보았던 반장님들(소방사, 교, 장까지 통틀어서 반장. 소방위 이상부터 주임, 짬이 찬 장 혹은 위가 보조인력 지도관을 맡음)이 나를 알은체 해주셨다. 낯가림이 많은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센터에서 친한 의무소방원이 반갑게 인사해주며 나에게 해야 하는 일들을 인수인계해주고 담배를 피우러 가자고 했다. 흡연장에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했다.


 “바쁜 센터고 본서에서처럼 열심히 근무하고 싹싹하게 하면 잘 적응할 거야. 그리고 센터의 실세는 식당 이모님이야.”

 그렇게 웃으며 말해준 의무소방원은 본서로 돌아갔다. 


 출근한 지 4일 정도 지났을까?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있던 나에게 본서에서부터 안면이 좀 있는 신연식 반장님이 말을 걸었다. 


 “제규야, 오늘 식당 이모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점심 뭐 시켜 먹을까?”

 무슨 용기가 났던 걸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생긴 걸까. 나는 바로 말했다.

 “반장님! 저 요리사 출신입니다. 혹시 괜찮다면 점심을 제가 준비해도 되겠습니까?”


 놀라는 눈치였다. 이런 경우는 없었으니까. 신연식 반장님은 팀장님한테 보고했고(소방서는 보고가 생명이다. 본서에서 보조 인력들을 담당했던 지도관님이 한 말임) 팀장님이 요리를 해보았냐고, 잘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물어봤다. 아까와는 달리 우물쭈물하는 나를 대신해서 신연식 반장님이 본서에서부터 잘하던 친구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팀 간식비에서 5만 원을 빼 온 신연식 반장님과 같이 센터 앞 마트에서 장을 봤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13명의 성인, 그것도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단백질 보충이 되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게 뭘까?’ 메뉴를 돼지 앞다리살 수육으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앞다리살 열풍이 불기 전이라서 값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소방복 입고 장을 보면 마트 직원들이 고생한다면서 조금 더 줄 때가 있다. 이날은 월계수 잎과 수육 소스를 조금씩 더 주셨다. 


 “형이 뭐 도와줄까? 그럼 요리사를 하다가 온 거야? 게임은 뭐해? 나중에 공부 좀 해서 소방 들어와! 형은 의무소방 출신이야.” 


 2층 식당으로 올라가서 요리를 준비하는데 같이 마트에 갔던 신연식 반장님이 계속 말을 걸어주었다.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고 같은 게임을 해서 그런지 친형처럼 금세 친해졌다. 그러는 사이에 식당에 있는 스피커에서 큰 소리로 출동 벨이 울렸고 반장님은 사라졌다. 긴박하게 울리는 출동 벨을 뒤로 하고 나는 열심히 재료 손질을 했다.


 솥뚜껑만 한 냄비에 물 조금 넣고 양파와 파 마늘, 월계수 잎, 후추, 쌈장과 된장을 넣었다. 물은 조금만 넣는 게 좋다. 찌는 것처럼 조리해야 부드럽게 익는 느낌이 난다. 난 수육을 할 때 커피 넣는 걸 좋아하는데 센터에 내려가면 항상 커피가 있다. 달달한 믹스커피부터 원두까지 다 준비되어있다. 커피를 챙겨서 식당에 다시 올라왔다. 


 재료들을 다 넣은 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고기를 넣는다. 뚜껑을 닫고 강불로 20분, 중불로 40분 동안 삶아주면 어느새 다 익는다. 센터 식당은 일반 가정용 가스레인지를 쓰고 식기는 업소용 대용량 솥이라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럴 때는 칼이나 젓가락으로 고기의 가장 두꺼운 가운데 부분을 찔러서 확인해보면 된다. 다행히도 잘 익었다. 


 고기를 삶고 조금 남은 고기로는 김치찌개를 끓였다. 고기는 뜨겁게 먹을 수 있도록 냄비에 트레이를 받치고 담아놓았다. 식사가 다 준비되었다고 식사 벨을 누르자 직원분들이 올라와서 밥을 먹었다. 여기 팀에는 조리과 출신 반장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먹을 때가 가장 긴장되었다. 다행히도 맛있게 드셨다.  

    

 소방서는 점심시간이 없다. 실제로 없기도 하고 언제 출동지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식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구급대가 출동을 나갔다. 모두 식사를 마치고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구급 대원분들이 컵라면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아마 음식이 식었거나 안 남았다고 생각해서 가져온 거 같았다. 난 혹시 몰라서 구급대 반장님들의 고기를 안 썰고 냄비에 보온이 될 정도로 데우고 있었다. 따듯한 고기를 썰어내고 국을 데워서 식사준비를 했다.


 바쁜 직원분들에게 따듯한 밥을 차려주고 센터로 내려가니 내 칭찬을 많이 하셨다. 퇴근 시간이 되어 교대근무 및 인수인계를 했다. 그날은 다른 팀들에게 내가 밥한 이야기까지 인수인계되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빨리 나가려는 순간, 교대근무 출근을 하고 장비점검을 마친 도급과 식당 담당 설강민 반장님이 불렀다.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미안하지만, 또 한 번 좀 부탁해도 될까?” 


 나는 좋다고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