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스펙이다>
4. 밥 주는 곳이 좋은 곳이다.
나는 밥 하는 게 즐겁지 않다. 요리를 못하지는 않지만 힘들게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도 결국 몇 분도 안되어 사라져 버리는 게 못마땅하다. 요리하면서 주워 먹은 걸로 배를 이미 채운다. 게다가 설거지 같은 뒤처리는 얼마나 귀찮은가? 그 짓을 하루 3번 이상 해야 된다. 모든 음식이 내 손을 타면 신비감이 떨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심할 때는 주방에서 못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가에서 그렇다. 부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기장 밖으로 탈출할 수 없는 철가루 같다. 그래서 나는 밥 주는 곳이 고맙고 뭘 나에게 먹이든 따지지 않는다. 반찬 투정은 언감생심! 고춧가루, 마늘 쪼가리. 파 조각까지도 감사히 먹는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위해 요리를 해준다면 무척 감사하다. 특히,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남자는 무척 섹시하다.
그래서 때려치우고 싶어 오늘내일했던 직장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로 했다. 바로 내 점심을 챙겨주는 곳으로 말이다.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을 간다”라는 책이 있다. “나는 직장 대신 밥 먹으러 간다.”라고 제목을 바꿔본다. 당일 금방 지은 밥과 반찬은 내 내장을 달래준다. 한 달 식단표를 유심히 살펴보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눈을 감고 보지 않는다. 선물을 받는데 그 선물을 이미 알면 재미없지 않은가?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에 형광펜을 긋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모든 메뉴가 할렐루야이다.
번외 편도 있어 즐겁다.
출근해야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직장동료의 드립 커피도 감사하다. 드립 커피를 마시면 재미있는 드립력이 생기는 것 같다. 말만 하면 빵빵 터진다.
일 년에 한두 번의 회식도 있다. 평소에 나랑 수다 떨기 좋아하는 직장 동료는 발끈 되며 말한다.
“우리 같은 MZ세대는 회식을 싫어해요. 맞잖아요.” 하며 나의 동의를 구한다. 미안하다. MZ세대가 아니다, 난. 점심도 매일 챙겨주는 데 가끔 저녁은 별미 아닌가? 나는 저녁 한 끼 때울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춤이라도 추라면 한 판 출 기세다. 밥 한 끼에 연연하지 않는 럭셔리한 그대들과는 달리 나는 밥 한 끼가 큰 선물이다.
그래서일까? 밥을 먹는 내 모습을 유심히 보던 동료가 말한다.
“밥이 진짜 맛있나 봐요. 눈을 감고 음~음~ 음미하면서 먹네.” 하면서 웃는다. 나도 모르게 눈도 감고 감탄하면서 먹었나 보다. 밥이 입에 들어가는 5~10분 사이를 위해 왕복 3시간 운전하고 출근한다. 점심 값을 미리 내긴 했지만 밥도 주고 월급도 주니 감사하게 다니게 된다.
밥 주는 곳이 좋은 곳이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주면 감사히 받고, 빡치는 일이 있으면 크게 웃으면 된다. 사탕 하나에도 해맑게 웃는 아가들을 닮은 천진난만한 내가 다행이다. 밥만 맛있으면 모든 게 용서되는 드러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