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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키진 Nov 04. 2022

갱년기 호르몬을 역이용하다!

평생 안고 가야 할 시댁문제 해결하기

 이런 게 '화병'인가...?



화병 증상: 우울감, 불면, 식욕 저하, 피로 등의 우울증상 외에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금방이라고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하며, 숨 쉬는 것이 답답하고 가슴이 뛰는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소화가 잘 안 되거나 명치에 뭔가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을 느끼기도 하며, 몸 여기저기에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도....... <네이버 지식백과>


이 정도 까지는... 그럼 '갱년기 증후군'인가...?



갱년기 증상: 40대 중후반에서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데, 생리가 불규칙해지는 것이다. 또한 여성호르몬 결핍에 의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60% 정도는 안면홍조, 발한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는 안면홍조와 함께 피로감, 불안감, 우울, 기억력 장애 등이 동반되기도 하고, 주로 밤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수면 장애를 겪기도 한다. 증상은 폐경 약 1-2년 전부터 시작되어 폐경 후 3-5년간 지속될 수 있다.....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지금까지 바쁘게 달려오다가 잠깐 멈추었더니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온다. 여유가 생겨서일까 아니면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지나간 내 젊음이 아쉬워서 그런 걸까.


 결혼하자마자 세 아이를 낳고 잘 키우기 위해 온몸으로 발버둥을 쳤다. 그것뿐인가. 남편과의 관계,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한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한 노력, 그리고 끊임없는 나의 성장을 위한 도전의 반복. 아이를 키우면서 읽지도 않았던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알고 느끼는 게 좋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육아서적으로 시작해 점차 영역을 확대해 갔다. 그래서 2년 전부터는 경제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부동산에 관심이 생겼고, 상식을 넓히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됐다. '공인중개사' 자격을 위한 시험 준비! 지금 생각해 보면 멋모르고 시작했으니 가능했었던 것 같다. 코로나 시기에 세 아이를 집에서 돌보며 독학으로 공부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년에 걸쳐 3개월씩만 죽도록 집중해 보자는 전략을 세웠다. 엄마와 놀고 싶다던 아이들을 설득하며 길게 공부하기는 무리였고, 막내가 초1이다 보니 아무래도 손이 안 갈 수 없는 나이라서 최대한 짧게 끊어서 안전하게 갈 수밖에 없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최선을 다했고 진심 합격하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이뤄졌다. 합격증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지만, 정신없이 바쁘게 공부하는 사이 아이들이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공부하느라 잘 챙겨주지 못하는 부분을 스스로 하게 되고, 집안일까지 아이들이 하는 부분이 많이 늘었다. 오히려 막내가 엄마를 위해 밥을 차려주고, 세 아이가 서로 챙겨주는 모습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지금 진로강사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고, 엄마가 집을 비우는 시간에도 자기 주도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물론 어릴 적부터 독립적으로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한 부분도 있지만, 2년 사이 많이 크긴 컸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그렇게 합격을 하고, 아이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시간이 많아졌다. 바로 중개사를 하고 싶진 않았고 애초에 그럴 계획까지는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고, 뭔가에 빠지면 두 가지(육아와 일)를 함께 할 수 없는 심할 정도로 올인한다는 것을 알기에 천천히 시작을 하고 싶기도 했다. 일단 중개사 일은 더 나이 들어서 한다고 미루고 있었고, 생각보다 엄청 힘든 공부였기에 좀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브런치 글쓰기도 시작하고, 배우고 싶던 댄스학원 등록도 하고.. 애쓴 나에게 보상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쓰리고 상상초월 아프다. 식은땀을 흘리며 3-4시간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급하게 먹는 습관도 있긴 하지만 그러기엔 많이 힘들다. 지금까지 바삐 살아오며 급하게 먹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이런 증상으로 나타나나? 무언가 나도 모르는 스트레스가 있는 건가? 시험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는데, 혹시 예상치 못한 병이라면?


 겁이 났지만 검진을 미룰만한 상태가 아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어쨌든 다행히도 큰 일은 없었고, 약을 먹고 나아졌다. 그 증상이 있을 때는 죽 한 숟가락 먹기도 어려워 천천히 수십 번을 꼭꼭 씹어 먹었는데, 지금은 또 빨리 먹는 습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건강을 위해서 그러면 안 되는데.. 몸도 아프고 해서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이제는 쉬어도 된다는 쉬어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나도 그래야만 했다. 한 달가량 결혼 후 처음으로 휴가 다운 휴가를 보냈다. 물론 내 손이 덜 가는 것뿐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엄마들은 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것이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나만큼 아는 가족원도 없거니와 말이 독립이지 독립을 하기엔 아직 어리다. 남편도 아직 독립이 안되었는데 아이들은 오죽하랴.


 독립이 안된 남편. 이 부분에선 할 말이 많다. 갱년기 증상인지 화병인지.. 초입에 증상을 이야기 한 이유가 있다. 결혼한 아내들이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이며 단연코 1위를 차지하고도 남을 뻔한 시댁 이야기이다.

결혼을 한 지 16년째 되고서도 하루에 몇 번씩 전화가 오고 가고, 도움을 주고 싶은 건지 참견을 하고 싶은 건지.. 말해 뭐하랴. 아직도 아이처럼 못 미더운 것이리라. 마흔이 넘은 아들과 며느리를 쥐락펴락 하고픈 시어머니의 마음이란. 아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나 신혼 때부터 출근한 남편에게 사소한 불만거리 하나라도 있으면 득달같이 전화해 퍼붓는 것을 보면 아들을 위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고, 자신의 화를 푸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들이 평일 늦게까지 일하느라 명절 전날 늦잠을 자고 오후 3시 넘어 도착했다는 이유로 그 화살은 며느리에게로 왔고, 다음 명절부터는 음식을 다 해서 오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씀을 하시는 그런 시어머니. 셋째를 낳은 지 100일이 되지 않아 내 몸도 세 아이도 감당이 안되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에서 집에 갈 테니 삼계탕을 끓여 놓으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경우를 수없이 겪으며 살아온 날들이 애처롭다.


 어른으로 대접해야겠다는 다짐도 있었지만, 남편을 봐서 많이 참았던 것이 크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낳아주신 부모에게 잘해드리지는 못해도 최소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상식적으로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결혼 3년 차에는 폭발을 했다. 남편에게 시어머니든 나든 누구 하나만 선택하라고 할 정도로 심각했던 시기도 있었고,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나름 이해하면서 사이가 좋아질 방법을 연구하며 노력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멋대로 기분대로 행동하고 며느리를 존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없어 점 점 싫은 표현을 하기도 하고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중간에서 입장이 곤란한 남편도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 공감은 되면서도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뭐 잘못한 것도 없이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게 억울하고 우울감마저 들었다. 코로나가 힘든 시기였지만 고마운 게 있다면 시댁을 자주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안부전화를 드리면 무안하게 하고, 안 하면 죄책감이 들게 하는 이 상황에서 며느리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든다.


 갱년기 비슷한 증상이 오면서 시댁을 향한 불만은 우울로 바뀌고, 여러 번 독립 선언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 분명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남편까지 미워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분명하지 못한 태도와 아내를 존중받지 못하게 한 원인 제공은 남편이 했으리라고 본다. 불쾌한 기분이 들 때 감정 표현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참았던 내 잘못을 생각하니 엄청 바보처럼 느껴지면서 결혼 후 그렇게 지내 온 수많은 시간들이 못 견디게 아까웠다. 젊음을 되돌릴 수 없는데, 시댁만 빼면 남편과의 우리 가정은 행복한데, 어찌하여 꼭 함께 가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참는 것이 남편을 위한 것이고,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다. 행복한 나와 가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애썼는데 누구라도 날 존중해 주지 않는다면 참을 수 없었다 더 이상은. 어쩌면 갱년기가 용기를 준 것이다.


 남편에게 도저히 안 되겠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신혼 초에는 "엄마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씀까지는 안 하실 텐데.." 하면서 못 믿겠다는 반응과 함께 서운한 눈빛을 보내고 심지어 화를 내기까지 했던 남편이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 그러면 믿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게 맞을 것 같아. 나와 살 이유가 없잖아." 하며 이혼을 요구하기도 했다. 2년 차가 되면서부터는 조금씩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평소 아들에게 했던 행동들에 더 얹어 며느리에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본 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때가 왔다. 그 이후로는 화가 좀 풀릴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며 달래주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남편은 "조금만 이해해줘. 엄마가 그러시는 건 인정하지만 그냥 기본만 하자. 내가 잘할게" 이런 말을 되풀이했고, 남편과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되도록 좋게 보려고 노력하고,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갱년기가 날 가만 두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은 참지 말라고, 스트레스를 계속 받으며 건강을 상하게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지금까지 힘들어도 밀어내며 애써 괜찮은 척 외면하고 살았던 날들을 계속 연장할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해방되었다. 시댁과 멀어져도 남편과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 그 세월들이 아까웠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참아온 세월이 있었기에 시댁을 멀리해도 남편이 이해해 주고 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애써 날 달래고 싶었다. 바보 같은 지나 온 세월을 탓하면 무엇하리. 지금 이 순간 행복으로 덮어버리면 될 것이지. 얼마 전 남편에게 "나 요즘 엄청 행복하다. 우리의 삶을 살 수 있어 행복하고 당신을 이쁘게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해. 고마워" 남편은 조금 찝찝한 마음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은 있겠지만, 가족관계의 중심은 부부라는 것과 부부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낀 듯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지만 결단을 내리고 용기를 내게 해 준 갱년기에게 고맙다. 남편에게 제일 고맙다. (그 우여곡절 끝에 맺은 결실의 과정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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