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인왕산으로 향했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으로 이동. 경복궁역에서 제법 걸어가야 입구가 나온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와 먹고 싶다는 간식거리를 샀다. 그렇게 인왕산 입구에 도착.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간식으로 구입한 포도를 먹고 등반 시작!
시작은 쉽지 않았다. 역에서 입구까지 이동으로 지쳐버린 듯 보였다.
아빠가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별로 오르고 싶은 생각이 안 드나 보다.
그래도 간신히 간신히 올라가고 있었다.
산 입구에서부터 쉬어갈 곳을 찾았다.
아빠 조금 쉬어가면 안 돼?
벌써?
힘들어
쉼터 나오면 휴식하자
언제 쉼터 나와?
조금만 더 가면 나와
아직 멀었어?
조금만 더 가면 나와
힘들어
조금만 더 가면 쉼터 나와
힘들어
조금만 더 힘내
왜 이렇게 멀어?
조금만 더 가면 나와
쫑알쫑알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이상하게 생겼네.
군대. 말을 계속하면 더 힘들어
그래?
쫑알
쫑알...
높은 산이 아니었지만 정상까지 오르기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문제는 체력이 아니라 마인드였다.
그때 의외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산책 나온 아주머니와 반려견.
보람이가 허우적거리며, 딴짓하며, 쫑알대며 나무늘보처럼 걸어가고 있는데 아줌마와 반려견이 우리를 앞질러 추월해 나갔다.
추월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천천히 걷고 있어 그렇게 됐다.
근데 반려견이 추월해 가자 보람의 눈빛과 마인드가 바뀌었다.
우리를 앞질러간 반려견이 흙을 뒤지며 보람이처럼 딴짓을 하고 있을 때
보람이가 아빠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영문을 몰랐다.
반려견을 앞지르고 한참 가서 나한테 속삭였다.
아빠! 우리가 개한테 질 순 없잖아!
아주머니와 반려견이 우리를 앞질러 가니 기분이 안 좋았나 보다.
반려견이 앞서간다고 우리가 지는 것도 아니고,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맞장구를 쳐줬다.
"그럼! 우리가 질 순 없지!"
그때부터 보람이는 다른 사람이 됐다.
빨리 걷다가, 뛰다가, 급경사에서는 네 발(?)로 기어오르는 신공까지 보여줬다.(대문사진)
한참을 그렇게 올라가 뒤돌아봐도 멍멍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좀 천천히 쉬었다 가자고 해도 보람이의 경쟁심은 이미 불붙어 있었다.
경쟁심은 분명 엄마를 닮은 듯하다.
보람 엄마는 내심 이런 경쟁심이 공부에 나타나길 기대하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숨을 찰 정도를 힘들면 잠시 멈춰 섰지만 바로 오르기 시작했고, 그리고 다시 힘들면 천천히 걷거나 잠깐 서서 쉬었다가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계속 되뇌었다.
개한테 질 순 없잖아! 빨리 올라가야 해! 혹시 멍멍이가 올지 몰라!
맞장구를 쳐줬다.
그렇지 개한테 질 순 없지!
왜 이런 포즈를 취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힘들어 인왕산의 정기를 빨아들이려 했는지...
그렇게 해서 약체 보람이가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인왕산을 올랐다!
멍멍아 고마워 그 시간에 나타나줘서!
멍멍아 고마워 그 시간에 나타나줘서!
보람이는 자신이 등산할 체력이 안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이젠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체력은 충분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