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독서록

by 향글

이 책은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내 책장에 오래 묵혀 두었던 책이다. 책을 사고 나서 조금 읽기 시작하다가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고 책갈피는 여전히 챕터 원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 전에 브런치 독서 챌린지로 다시 읽게 되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 보는 일의 기쁨과 슬픔은 너무 즐겁게 단 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누구의 추천도 없이, 책 내용도 전혀 모르고 샀지만 제목부터가 나의 관심을 사로잡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었고 저자도 그 유명한 알랑 드 보통이었다.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자이기에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나에게도 왠지 친숙함이 느껴졌다.


하드 커버로 된 책 표지는 깔끔한 사진이 덮고 있었는데 황량한 흙바닥에 멀리 보이는 지평선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낮고 길게 늘어진 산등성이가 보인다. 사진에서 보이는 파란색과 베이지 색의 색감 조화,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찍어 놓은 듯 한 빨간색 수트케이스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감성 돋는 사진에 쓰인 문구 또한 예술이었다.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무엇이 일을

이토록 즐겁게 혹은 즐겁지 않게 만드는가?


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의 이슬이 증발하듯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

이제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무대일 뿐이다.



이 책은 표지만 보고 덥석 사버릴 만한 모든 매력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매일 천직을 가지고 싶다고 징징대던 삼십 대의 나는 책을 보자마자 ‘이거다!’ 하면서 주저 없이 골랐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왜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면 좋은지 알려줄 것 만 같았다.


나는 내 일을 많이 사랑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아주 질려버린,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에 항상 진지했고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하며 성실히 직장생활을 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인정도 받고 갈수록 기대가 높아지면서 나를 채찍질하며 인정욕구의 굴레에 빠져버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허탈한 순간이 찾아온다. 마치 풍성하던 꽃다발이 화병에 꽂혀 서서히 시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알랑 드 보통은 이렇게 아름답게 말했다. ‘풀잎의 이슬이 증발하듯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

처음 출근했을 때 가졌던 설렘과 기대감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묻혀서 이제는 아련함으로 남아버려,

‘아… 그때 그 마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잘하는 걸 해야 하는 걸까?’

‘재미, 급여, 자아실현 중 어떤 조건이 나를 제일 행복하게 할까?’와 같은 질문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불쑥불쑥 찾아와 나를 고민에 빠뜨렸다.

하지만 취업을 하려는 시점에서 이런 고민이라도 할 수 있으면 감지덕지이다.

대부분 시간에 떠밀려 돈에 떠밀려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고 본다. 그렇게 몇 년 또 열심히 일하다 보면

‘이 일이 나와 맞나?’라는 회의감이 들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예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읽는 것 같은 감동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책은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챕터별로 부두 노동자, 비스킷 공장 노동자, 직업상담사, 화가, 로켓 과학자, 회계사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저자는 다양한 직업 종사자들과 며칠 동안 시간을 보내며 인터뷰하고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글을 썼다. 내용도 흥미로왔지만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묘사하는 우아한 문장들에 매료되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나른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들은 (화물선에서 일하는 기술자들) 늘 어떤 직업의 물질적 혜택보다는 그 일 자체가 주는 재미를 더 높이 평가한다. (중략) 어린아이가 열차의 유압식 문이 여닫히는 ‘쉬익’ 하는 매혹적인 소리에 반해 기차 운전사가 되기를 갈망하거나, 부풀어 오른 봉투에 항공 우편 딱지를 붙이는 만족감 때문에 우체국 운영을 갈망하는 것과 비슷하다. (One: 화물선 관찰하기 중)



‘내가 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미간을 찌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길 줄 알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질문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수려한 문장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 버렸다. 잘 쓰인 문장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책 속으로 빠져드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일 자체가 주는 재미’를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문장을 읽는 것 자체로 재미를 느끼며 책을 읽었다.


어쩌면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나는 너무 거창한 이유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막에서 40년을 방황하던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던 것처럼, 나는 하늘이 나에게 점 지어준 소명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면서 더욱, 하늘이 나에게 맡긴 일이 무엇일까? 내가 하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닌가? 고민을 했었다.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 애를 쓰고 후세에 남길만한 업적을 이루지 못 한다면 실패한 삶이 될까봐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이름 깨나 알리고 유명해진 인생이 평범한 일터에서 하루를 보내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일반적인 인생에 비해 더 위대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책을 읽는 이유가 해답이나 감동이나 또 다른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냥 읽는 행위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냥 재미로 읽는 책 처럼 어쩌면 내 인생도 거창한 천직이나 소명 없이 그냥 '사는 것' 일지도 모른다. 나의 이야기를 하루에 한 페이지씩 채우면서...

책 마무리에는 선물과 같이 감동적인 문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 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 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일 안에 있는 순수한 에너지에 몰두함으로써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든. 의미가 있든, 의미가 없든 간에. 품위 있는 피로를 느끼며 가끔 자랑스러우며 가끔 행복할 것이다.

mahdi-rezaei-8RSwehLu9Ig-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Mahdi Rezaei>